[기자가 만난 사람]“복지용구 판매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는 일” 한승호_예인의료기 대표, 보조공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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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복지용구 판매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는 일” 한승호_예인의료기 대표, 보조공학사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4.04.22 09:00
  • 수정 2024-04-18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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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의료기 한승호 대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지금보다 훨씬 이전인 지난해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장애인생활신문에 근무 중인 동료기자가 정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한 그는 보조공학사이자, 나사렛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으며, 의료(보조)기기 용품업체 대표이기도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그 기자는 공장에서 출시되는 휠체어를 자신의 체형에 맞게 폭을 줄여주고, 휠체어 의자 쿠션과 등받이를 자체 제작해 몸에 불편함이 없도록 자체 제작해줬다며, 지난 20년간 휠체어를 이용해왔지만 이렇게까지 해준 곳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 대표에 대한 궁금증이 시작됐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까지 진심일까? 하는 호기심이 그에게로 발길을 이끌었다.

 

“동생 때문에 장애에 관심이 생겼고

딸 때문에 천직이 됐어요”

 

“그는 왜 이렇게까지 마음을 다하는 것일까”라는 기자의 궁금증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해결됐다. 그의 가족 중에는 두 명의 장애인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로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남동생은 발달장애인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장애인을 만나고 그들의 특성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죠.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쯤 장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나사렛대학교 재활공학과에 입학하게 된 게 시작점이었어요.”

대학을 졸업 후 한승호 대표는 기자에게도 익숙한 노틀담복지관 내 인천시보조기기센터를 비롯해 다른 지역의 보조기기센터 등에서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던 중 그에게는 두 번째 전환기가 찾아온다.

2017년 12월에 태어난 딸아이가 생후 5일째 되던 날부터 계속해서 구토하기 시작했다. 인천지역 대학병원에 한 달 이상 입원을 하며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고 서울 아산병원으로 전원을 가서도 입원은 3년간 이어졌다. 그곳에서 딸은 14번째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희귀난치성 질환 판정을 받았고, 소화기관의 장애로 현재도 입으로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고 ‘경관 급식’만 가능하다고 했다.

“3년이라는 입원 기간은 많은 것을 달라지게 했어요. 인천의 회사와 서울에 있는 병원을 매일 오가야 했으며, 아내는 병원에서 거의 상주를 한 상태였고요. 또 때에 따라 응급한 상황이 오면 퇴근 시간 전에라도 달려갔어야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힘들고, 무엇보다 팀원들에게도 미안해지는 것은 물론 업무에도 지장이 가더라고요. 그러면서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딸 아이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예인의료기를 차리게 된 거죠.”

▲ 예인의료기는 타 복지용구점에서는 다루지 않는 ‘특수교육 보조기기’와 ‘AAC’까지 취급하고 있다. 학령기 장애자녀를 둔 한승호 대표가 누구보다 장애 학생과 그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비슷하지만, 특별한

‘예인의료기’만의 매력

 

휠체어는 물론 노인들의 보행 보조기부터 체온계, 혈압계 등 건강용품과 배변 패드 등 예인의료기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여느 복지용구점에서 판매하는 것과 크기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자가 사무실을 찾았을 때 외관에 붙여진 취급 용품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두 개가 있었다. 바로 ‘특수교육 보조기기’와 ‘AAC’가 그것이었다.

먼저, 특수교육 보조기기는 말 그대로 특수교육 대상자인 장애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데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기를 말한다. 휠체어는 물론 워커, 인체공학 키보드, FM 보청기, 특수 숟가락 등 식사 보조기기, 독서 확대기와 손의 움직임이 불편한 학생들을 위한 입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우스인 ‘조우스’와 머리띠처럼 둘러서 사용하는 ‘헤드 마우스’ 등이 그것들이다.

의사소통 보조기기인 ‘AAC’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학생들의 학습과 의사소통을 도와줄 수 있는 기기로,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와 조사, 서술어 등을 신체 일부로 누르면 문장으로 만들어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한승호 대표는 복지용구점 대표 이전에 보조공학사였던 자신의 경력과 전문성을 활용해 기존의 복지용구점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보조공학센터에서 근무할 때 느꼈던 것 중에 대부분이 장애아이를 둔 부모님이 특수교육 보조기기에 대한 정보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신다는 거였어요. 부모님 외에도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고요. 이용만 하면 충분히 현재의 생활보다 나아질 수 있는데, 모르고 못 쓰는 건 너무 안타깝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가까이에서 정보를 주고 싶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딸의 이름을 담은 회사…

“부끄럽지 않게 운영해야죠”

 

9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여는 복지용구점이지만 실제 한 대표가 ‘문을 닫는 날’은 1년에 2번 명절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안전’이에요. 보조공학사라는 직업적 특성도 있겠지만, 단순히 복지용구점을 운영하는 대표의 마음으로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특히나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대여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장애가 있거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다 보니 ‘안전’이 제일 우선이죠. 예를 들어 휠체어에 어느 부분이 손상되거나 문제가 생겨서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 위험이 꼭 아침 9시부터 6시 사이에만 발생하는 건 아니잖아요. 더 이른 아침에도 늦은 밤에도, 또 주말에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보니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시는 분을 마다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 한승호 대표는 깊은 잠을 자는 새벽 시간 때가 아니면 항상 전화에 응대할 뿐만 아니라 퇴근 시간 이후나 주말에도 손님이 필요로 하면 다시 가게를 찾는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매장은 인천시 계양구에 있지만, 집은 영종도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내의 따가운 눈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 대표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내도 이해는 하면서도 그래도 퇴근 시간과 주말은 가족과 온전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다 보니 가끔 서운해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장애와 관련된 일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도 가족이었던 동생을 보면서였고, 또 지금 매장을 운영하게 된 것도 어쩌면 아픈 딸 때문이었잖아요. 저의 매장을 찾는 분들이나 가족분들도 제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느끼고 계신 분들이라 생각하면 모르는 척을 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예인이의 이름을 보고 찾아오시는 분들이잖아요.”

앞서 말했든 한승호 대표가 운영하는 가게의 이름은 딸의 이름 한예인에서 따왔다. 3년간의 긴 입원 기간을 마치고, 자라준 아이는 올해 8살이 되어 인천 서구에 있는 특수학교인 서희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엔 스스로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예인이를 출근길에 등교시키는 것으로 한승호 대표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아내 역시 장애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원래 초등학교 ‘도덕’ 과목 선생님이었던 아내는 아이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특수교육대학원을 졸업 후 계양구에 있는 특수학교인 인혜학교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한 지 이제 한 달 정도가 되어간다고 했다.

“요즘은 퇴근하고 나면 아내가 학부모님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제게 질문하느라 바빠요. 보조기기를 지금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장애와 질환이라는 게 진행형이잖아요. 당시에 맞췄던 휠체어나 의자들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신체가 변형되다 보니 불편한 점이 생기는 게 당연한데, 그럴 때마다 복지용구점에 전화할 수도 없고, 근데 제가 이쪽 일을 한다고 하니 아내를 통해 궁금한 점들을 물으시는 거죠.(웃음)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아니까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보조공학사이기도 한 한승호 대표는 복지용구를 사용하는 대상자를 위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가 가진 능력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라면 아낄 필요 없죠”

 

한승호 대표는 당시에는 상황 때문에 선택한 것이지만, 지금은 보조공학사로서 복지용구점을 운영하게 된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전문가들이 복지용구점을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복지용구점은 운영하시는 모든 대표님 역시 고객을 1순위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과 같은 전문가가 함께 한다면 훨씬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인의료기가 장애아이를 둔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사실 장애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은 비장애아이를 양육할 때보다 관심의 비중이 적은 것 같아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장애라는 것이 너무 낯설다 보니 대응 방법을 모르고, 또 아픈 아이를 위해서라도 생계를 게을리할 수 없으니 점점 소원해지는 거죠. 장애에 대한 정보와 성장기에 필요한 보조기기는 물론 학령기에 필요한 특수교육 보조기기의 정보와 신청 방법 등을 알려주는 곳들이 많아진다면 아이는 물론 가족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사회가 노력할 일이지만, 저의 매장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는 제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어떤 사람일지에 대한 물음표로 시작했던 한승호 대표와의 만남은 기분 좋은 느낌표로 마무리됐다. 처음 보조공학사가 되기로 했을 때도, 예인의료기의 문을 열었을 때도, 그리고 지금 현재도 그의 중심엔 항상 ‘진심’이 있었다. ‘진심’이라는 단어가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인 것처럼 앞으로도 한 대표는 지금처럼 예인의료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의 느낌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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