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22대 총선, 선거와 투표에 장애는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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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칼럼]22대 총선, 선거와 투표에 장애는 없었나?
  • 편집부
  • 승인 2024.04.18 11:07
  • 수정 2024-04-18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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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우/서울정인학교 교사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 때만 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뚜렷한 정치색을 지니지 않아도 단지 투표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먼저 고민이 되는 건 매번 선거를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먼저 고민이 되었던 건 사전투표였다. 사전투표를 할 때 내 선거구가 아닌 다른 선거구에서 투표를 하고 오고 싶었으나 그곳에 내 선거구의 점자투표 보조용구가 있는지가 불확실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과 다른 지역구였는데 퇴근하고 오면서 바로 투표를 행사하고 오고 싶었지만 마침 다른 일이 생겨서 겸사겸사 이 모든 것이 지나갔다.

결국은 사전투표 둘째 날인 토요일에 집 앞에 있는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하게 되었다. 이 역시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아내와 함께 아이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아갔다. 우리 지역의 주민센터는 늘 지하에서 투표가 이루어진다. 이 역시도 매번 겪는 일이라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휠체어를 타신 분이나 다리 등의 신체가 불편하신 분이 오면 어떻게 안내하나 문득 궁금해졌다.

투표소로 내려간다. 이때부터 정녕 마음이 불안해진다. 나의 등장으로 모든 선거위원들이 바짝 긴장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한 명의 등장으로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내도 투표를 해야 하니 나를 선거위원에 맡기고 간다. 먼저 내 팔을 어떻게 잡고 안내해야 하는지에서부터 이미 모두 당황했다. 내 팔을 잡아끌어서 투표용지를 받고 신분을 확인하는 곳에 이르러서도 이 분주함과 당황감은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 어디선가 찾아온 투표 보조용구에 투표지를 끼워 주지만 이 역시도 처음 해 보는 일반인에게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점자투표 보조용구와 투표지는 잘 맞게 만들어져 있어서 어찌어찌 끼워 주면 이제 투표소에 나 혼자 들어가서 도장을 찍어야 한다.

그래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혼자 있는 투표소 안에서의 공간이, 이 짧고도 긴 모든 투표의 순간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인 것 같다. 물론 밖에서 예의주시하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나는 최대한 즐기고 누리고 나온다. 점자로 찍혀 있는 후보들의 당과 이름을 잘 확인하고 그 옆에 구멍에 도장도 넣어서 잘 찍힐 수 있는지도 확인한다. 내가 원하는 후보 옆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도 여러 난관에 봉착한다. 도장을 구멍에 넣어서 제대로 찍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장을 투표 보조용구에 잘 맞춘 다음 살살 뚜껑을 덮는다. 혹시 동그라미가 칸 안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까 봐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잘 덮은 후에 꾹 누른다. 이때도 혹시 안 눌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꾹 누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장이 번질까 봐 적당히 누르고 떼는 기술이 필요하다. 투표용지를 빼서 잘 접은 후에 내가 늘 마지막으로 하는 작업이 하나 있다. 점자투표 보조용구의 모든 구멍을 도장으로 더듬어 보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후보 옆에는 도장의 흔적이 묻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비밀투표가 될 수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점자투표 보조용구의 여러 후보들의 구멍에도 흔적을 남겨 다른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물론 저 사람들이 내가 누구에게 투표하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비밀투표의 원칙을 지키고 싶은 나의 작은 발악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어렵사리 찍은 투표용지를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투표함에 넣고 나서 또 어설픈 안내를 받으면서 밖으로 나온다. 진작에 투표를 마친 아내가 나를 인계받고서야 나의 한 표 행사가 끝난다. 선거위원이 안내 보행을 뭐 저런 식으로 하냐는 와이프의 핀잔을 뒤로 한 채 또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만약 다른 구에서 사전투표를 했다면 과연 점자투표 보조용구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을까? 이런 것에 진심으로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아내가 선거관리본부에 전화해 알아본다. 다른 투표소에서도 나의 지역구 의원이나 정당의 번호가 쓰여 있냐는 질문에 알아보고 답변을 주겠다는 선거관리본부는 아내에게 다시 콜백을 해 주었다. 다른 지역구는 점자투표 보조용구는 마련되어 있지만 그 위에 번호만 쓰여 있고 그 번호에 해당하는 선거후보자는 본인이 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투표 보조용구가 마련되어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직도 이마저도 잘 되어 있지 않은 투표소들이 많고, 사전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투표소나 선거위원들이 많다는 건 대한민국의 선거관리위원회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가장 중요한 건 장애인이 왔을 때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응대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장애인이 사회에 진출하고 거리에 나가고 더 많이 눈에 띄어 더 이상 불편하거나 어색한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리로, 동네로, 지역 사회에 있는 가게로 나서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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