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F(장애)코드’ 받아야만 끝나는 게임…벼랑끝에 선 ‘발달지연’ 아동들
상태바
[특별기획] ‘F(장애)코드’ 받아야만 끝나는 게임…벼랑끝에 선 ‘발달지연’ 아동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4.03.22 09:00
  • 수정 2024-03-25 13: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해상과 ‘민간치료사의 발달지연 치료’ 실손보험 지급대상 여부 논쟁 중인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

‘발달지연’은 말 그대로 발달과정에 있어 또래보다 늦기는 하지만, 아직 명확히 ‘장애’로 판단하기에는 가능성이 보이는 상태를 뜻한다. 모든 장애아이를 둔 부모 역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발달지연 부모들은 내 아이가 영구적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동시에 발달지연에서 정상발달 범주로 아이를 이끄는 것이 자신의 숙제라는 생각에 매일매일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발달지연 아이와 부모들은 ‘놀이심리재활’, ‘미술치료’, ‘음악치료’, ‘감각통합치료’, ‘언어재활’, ‘인지치료’ 센터를 찾아다니고, 길게는 1년 가까이 대기명단을 걸어두고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줄타기하는 것과 같은 불안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지난 2023년 또 한 번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어린이보험의 80% 가까운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해상’이 발달지연 아동 대상의 놀이, 미술, 음악 등 심리치료 가운데 민간치료사가 이행하는 치료에 대해서는 실손보험 진료비 청구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또 하나의 싸워야 할 상대가 생겼다. _차미경 기자

 

현대해상 측 “민간치료사에 의한

치료 실손의료보험 지급대상 아니야”

발달지연 아동 부모측 “놀이·미술·음악

치료사 국가자격증 자체가 없어…억지 이유”

 

현대해상 측은 지난해 5월, 무자격 의료행위를 근절하고 부당한 보험 지급 청구로 다른 고객들이 손해를 입는 상황을 없애겠다는 취지를 덧붙이며, 발달장애인 심리치료 관련 기관(병원, 부설센터도 포함)에 공문을 보내 민간치료사의 발달지연 치료에 따른 비용은 실손의료보험 지급대상이 아니라고 안내했다.

현대해상이 병원에 보낸 공문을 골자를 살펴보면 발달지연(R코드) 실손의료비 심사기준으로 의료(보조)행위 자격자에 의한 비용은 지급하겠지만, 민간치료사의 행위는 부지급 대상이라는 것. 의사가 처방했거나 치료가 필요했다고 하더라고 이와 상관없이 민간치료사가 실행한 모든 치료행위는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명시한 민간치료사에는 발달지연 아동들이 주로 치료를 받는 과목으로 민간단체와 학회 등에서 발급하는 놀이심리재활사, 미술·음악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을 뜻한다.

기자가 만난 발달지연 자녀를 둔 ‘발달장애인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 임수진 공동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보통 발달지연 아이들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가서 의료진을 통해 아이의 발달이 늦은 것 같으니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는 추천을 받고 대학병원에 재진을 받는다고 했다. 재진에서도 발달지연으로 판단되면 의학적으로 발달지연을 뜻하는 ‘R코드’를 처방받고 이 소견서 등을 바탕으로 병원 연계 센터 등에서 감각통합치료, 놀이심리재활, 언어, 미술, 음악치료 등을 받으며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아이의 발달지연 경과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내에 있는 치료센터는 대기 자체가 최소 2년 이상이다 보니 보통 준종합병원 소속 센터나 로컬센터에서 치료를 받아요. 사실 이곳에서도 대기는 기본 옵션이나 다름없어요. 대부분 부모님이 다니는 곳엔 의사가 상주하고 있고, 의사의 진단과 치료 방향을 잡아주면 치료사님들이 그것에 맞게 치료를 하는 거죠.”

문제는 발달지연치료센터에서 시행되는 놀이, 미술, 음악, 감각, 언어재활을 진행하는 치료(재활)사 중 국가자격증은 감각통합치료사와 언어재활사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각통합과 인지의 경우 ‘작업치료사’라는 국가자격증이 존재하며, 언어재활의 경우는 언어재활사가 이를 맡는다. 이 두 자격증 외에는 99% 민간자격증이다. 애초에 국가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이 없다는 뜻이다.

보험사와 일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언어재활은 실비가 계속되니까 괜찮은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하지만, 이건 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해당 부모들은 말한다. 임수진 공동대표는 “언어재활은 물론 놀이심리재활과 감각통합치료 등 모든 재활, 치료 분야들이 아이 발달에 도움을 주는 부분이 존재해요.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일수록 놀이심리재활에서 심화적으로 다루어줄 수 있는 정서적인 부분, 과격한 행동 등의 태도적인 부분까지도 함께 다루어 줄 수 있죠. 언어적인 지연만 있다고 해서 언어재활만 처방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수준과 성향에 맞게 협업할 분야와 함께 구성해 언어발달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에도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은 고려하지 않고 언어재활만 받으라고 말하는 격이죠.” 심지어 놀이심리재활을 이행하는 ‘임상심리사’의 경우 보건복지부 소관임에도 불구하고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이 산업관리공단이라는 이유로 국가자격 치료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간자격증 치료사의 발달지연 아동 대상 치료에 대해 의사가 지휘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점과 애초에 국가자격증으로 치료할 수 있는 범위는 언어와 인지뿐이기에 이것은 보상을 해주기 싫어서 만들어낸 조건이라는 비판에도 현대해상 측은 요지부동이다.

결국, 취재를 진행하던 2024년 2월 기준으로 현대해상 측은 ‘R 코드’를 부여받은 발달지연 아동의 초기 6개월 치료비는 지급하되, 기존 가입자나 지금까지 실손의료비를 지원받았던 이들은 더는 지급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후 이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현재 44개월 발달지연 아이를 양육하는 임이랑 씨 역시 지난해 9월 아이가 받고 있던 놀이심리재활 치료사가 민간자격증 소유자라는 이유로 실손의료비 청구 중지를 통보받았다. 임 씨의 아이의 경우 눈 맞춤, 호명 반응은 괜찮았지만, 손기술 기능도 좋지 않았고, 상호작용 반응도 약해 약 1년 정도 또래보다 발달이 늦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로컬 재활의학과에서 언어재활과 감각통합치료, 놀이심리재활을 시작했고, 놀이심리재활 이후 어른과 상호작용 질이 높아졌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하는 기능도 향상됐을 뿐 아니라 지시수행도 곧잘 따르게 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하지만 실손의료보험 지원이 끊긴 후 1회 받을 때마다 8~10만 원의 비용이 드는 로컬센터에서는 치료가 부담됐던 임이랑 씨와 아이는 놀이심리재활은 지역 복지관에서 진행하고 있다.

 

# 익명을 요구한 OO 씨 역시 43개월 발달지연 아들의 놀이심리재활 지원이 중단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복지관 등을 알아봤지만, 기본 대기 기간이 2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고 현재 다니고 있는 놀이심리재활을 중단할 수도 없다. 그간 놀이심리재활을 통해 아이의 상호작용과 태도 교육 등이 얼마나 눈에 띄게 좋아졌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공백이 생기면 나아지고 있는 아이의 상태가 퇴화할까 봐 남편은 새벽까지 일하고, 본인도 아침저녁으로 일을 하면서도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임이랑 씨는 “정부에서 발달지연 아이들을 위한 보험 정비나 개선 및 보완이 된 정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내 일이 아니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향후 우리 자녀, 조카, 손주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간치료사 지원불가는 시작 불과…

현대해상 최종목표는 ‘F코드’ 받기?

발달지연에서 ‘발달장애’로 이끄는

공포의 알림 “자문 대상자입니다”

 

앞서 발달지연에 대한 ‘R코드’를 언급한 것은 지금부터 이야기할 보험회사의 ‘자문시스템’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발달이 다소 늦기는 하지만 아직 명확히 ‘장애’로 판단하기에는 가능성이 보이는 상태를 ‘R’로 표시한다면, ‘F코드’는 말 그대로 고쳐질 수 없는 ‘장애’에 대해 붙여지는 코드다.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R코드’는 대부분 결여, ‘지연된’이라고 질병명이 분류되는 것에 반해 ‘F코드’는 ‘음성장애’, ‘자폐증’, ‘발달장애’ 등 장애로 표시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실손보험 약관 내 ‘F코드’는 치매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말하기와 언어의 특정 발달장애 ‘보상하지 아니하는 손해’라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발달지연 아이들은 그동안 ‘지연’에 포인트를 둔 ‘R코드’를 통해 실손보험 보상을 받아왔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보험료를 받기 위한 ‘수’가 아닌 담당 의사의 검진 결과 정당하게 받은 질병코드이다.

하지만 문제는 보험사들이 ‘R코드’를 통해 실손의료보험비를 받아왔던 대상자에게 보험사 자문 의사에게 ‘자문’을 구한 후 ‘F코드’ 진단을 받고 실손의료보험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데에 있다. 이렇다 보니 발달지연 부모들 사이에서는 보험회사에 “실사 나갑니다.”는 안내 문자가 꼭 “곧 지원 중단입니다.”를 알리는 문자 같다고 표현한다.

앞서 인터뷰한 OO 씨 역시 놀이심리재활 외에 언어재활과 감각통합치료 실비를 청구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하면서 청구 건이 늘어날수록 실사에 걸리는 거 아닐까?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현재 7세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진경 씨 역시 지난 1월 중순 현대해상의 ‘자문’을 통해 ‘F코드’ 통보를 받은 뒤 실손의료보험 지원이 올 스톱됐다. 그간 자문결과에 관한 얘기를 지인들에게 들어온지라 자문 자체를 거부했지만, 끝까지 피할 수는 없었고, 다니던 병원의 아이 담당 의사가 지금 아이 상태면 당연히 ‘R코드’가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집을 방문한 손해사정사 역시 아이를 본 뒤 ‘F코드’가 나오진 않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 동의서에 사인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F코드’였다. 심지어 기존에 다니고 있던 병원의 진단서는 첨부되지도 않았다. 김진경 씨는 자문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자신과 아이가 참석하는 ‘동시 자문’을 요청했지만, 자신들이 지정해준 병원, 그것도 ‘정신과’에서만 동시 자문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진경 씨가 병원을 믿지 못하겠다며, 자신이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도 ‘정신과’에서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진단서가 제외된 채 자문이 이루어졌으니 ‘무효’라는 그녀의 주장에는 법적으로 대응하라는 말 이후 현재까지 실손의료비 지원을 중지하고 있다.

김진경 씨는 “아이들의 발달은 몇 달 지켜보고 결론을 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실제로 어떤 아이들은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면 8~9세에 가서도 또래와 같은 수준의 발달 수준으로 끌어올려지기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 7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너는 발전 가능성 없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너무 잔인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금융감독원에 기존 진단서 없이 자문을 진행한 형태에 대해 민원을 넣었지만 아무런 답이 없는 상태다. 허허벌판에서 홀로 목소리 내는 것처럼 너무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의료자문 심사’ 안내 문자, 발달지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이 문자가 받는 순간 ‘실손의료비 지원’ 종결을 알리는 문자와 같다고 말한다.

 

연대 측과 부모들은 보험사가 자문하는 것은 정상적인 보험사의 권한이자 절차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유독 자문의 전문의가 ‘정신과’에만 집중된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발달선별검사와 확진검사 과정에 관여하는 전문가들은 소아신경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의다. 그럼에도 현대해상이 자문하는 과는 ‘정신과 진료의’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미 국내 5대 병원이라 불리는 대학병원에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아이를 진료하고 상담했던 담당의가 ‘R 코드’를 부여해도 본인들이 지정한 병원, 그것도 서류 또는 일회성 면담만으로 ‘F 코드’를 부여하는 시스템에 부모들은 허탈함까지 느끼고 있다고 표현했다.

보험회사 측과 일부 전문가들은 ‘정신과’ 자문에 대해서는 정신과가 장애진단을 내리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전공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발달지연이라 하면 흔히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를 떠올리기 쉽다. 이 장애가 DSM-5에서 신경발달장애로 분류되어 있고 정신건강의학과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발달지연을 선별하고 확진함을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 영역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발달지연의 영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며, “신경발달장애는 신체 요인 외에 다양한 정서적, 환경적인 요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고, 발달장애에 이차적인 공존 질환의 평가도 필요한 경우가 많기에, 정신건강전문의뿐만 아니라 다분야 전문가들의 협력 진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직접 인터뷰한 장창현 정신과 전문의(느티나무의원)는 먼저 정신과와 ‘F코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정신과에서 F코드를 내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상담치료, 정신과적 치료, 약 처방을 하기 위해서는 F코드가 바탕이 되어야 보험에서 인정도 되고, 또 진단 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지, 정신과 전문의로서 자부심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에요. 꼭 진단명이 아니어도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쓰기 위해 코드를 넣는 경우도 있고요.” 장창현 전문의는 ‘F코드에’에 대해서는 진단과 치료를 위한 것이라고 확실히 이야기하면서도 지금의 자문 시스템은 정신과 전문의로서 아쉬운 부분과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류만으로 또는 1회 면담만으로 장애 여부를 진단하는 것은 지나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최근 장애판정을 기반으로 하는 상담을 진행 중인데, 임상심리사 선생님이 1시간 남짓한 정밀한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물론 저 역시 그 아동을 6개월 이상 면담하면서 아이의 장애 컨디션에 대해 충분히 살피고 있어요. 그러한 시간과 검사 등이 동반되어야만 분명하고 정밀한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서류만으로, 면담을 하더라도 1회의 대면만으로 확진에 준하는 판단은 지나치게 우려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아이의 컨디션에 대해 상세하게 살핀 뒤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아이가 장애인이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런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가입 당시 약관에 없었던 이유를 만들어 가로막고, 얼굴 한 번, 대화 한번 해보지 않은 아이에게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하는 매정함에 그들을 무릎 꿇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나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오늘도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장애아동’이 돼야만 끝나는, 우승자는 보험회사인 이 잔인한 게임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