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정신장애 이해와 치료효과 높이기 시리즈]2. 낯선 나, 여럿인 나 다루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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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정신장애 이해와 치료효과 높이기 시리즈]2. 낯선 나, 여럿인 나 다루기 2부
  • 이창선 기자
  • 승인 2024.02.24 10:00
  • 수정 2024-03-21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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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걸릴 수 있고, 치료해 갈 수 있는 정신장애. 제대로 앎이 대처에 필요하다.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 모두 걸릴 수 있는 다양한 정신장애들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 및 주로 적용되는 치료 전략 개관 시리즈를 총 16가지 주제로 연재한다. 본 시리즈 기획특집 기사를 집필하는 이창선 전문기자는 심리학과 치료약학 전공자로서 이상·임상심리학, 정신의학 문헌 분석, DSM-5와 ICD-10, 정신장애 학술자료 분석을 기반으로 기사 내용을 제시한다. _편집국

내가 미쳐 가는 걸까?

“나는 먹는 약물도 없고, 진단받은 정신질환도 없고, 의사는 나의 뇌에 문제가 없다는데,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반복, 지속돼 고통스럽다. 그러나 내 현실 검증력은 온전하다고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확인받았다.” 이 호소는 ‘이인성 및 비현실감 장애’의 진단 기준을 모두 보여주는 아픈 말이다.

현실 검증력은 이상 없으면서도, 자신의 느낌이나 몸이 비현실적인 것 같거나 자기와 분리된 것 같거나 낯설게 여겨지면 ‘이인성(이인증)’이라 하며, 주변 환경에 대해 이렇게 느껴지면 ‘비현실감’이라는 명칭을 DSM-5에서는 사용한다. 그만큼 비현실감을 세부적으로 비중 있게 진단하는 것이다.

이인증의 경험은 다양하다. ‘내가 없는 것 같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 ‘감정이 내게 있을텐데, 느끼지 못하겠어. 내가 죽은 것 같아.’ ‘아무것도 진짜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내 생각이 내 생각 같지가 않아.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있는 것 같지 않아.’ ‘몸의 일부가 나와 분리된 것 같다.’ ‘몸이 로봇이 된 것 같다. 기계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매우 불쾌하다.’ 이런 경험들에는 자신이 마치 타인이 되어 자기를 보는 것 같은 기이한 분리감이나 비현실감이 담겨 있다.

주위 세상이 낯설게 여겨지는 비현실감의 경험도 특징이 여러 가지다. ‘안개나 거품 속에 있는 것 같다.’ ‘꿈속에 있는 것 같다.’ ‘자신과 세상 사이에 베일이나 유리벽이 있는 것 같다.’ ‘주위에 생명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색채도 없는 것 같아.’ 때로는 몸의 눈은 정상인데도 시야가 흐릿하거나 시야가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경험을 한다. 주위가 입체가 아닌 평면처럼 느껴지거나, 물체의 크기가 실제와 다르게 보인다. 청력은 정상인데도 때로 목소리가 실제보다 약하거나 강하게 들리는 경험도 있다.

이상의 경험들은 진단 교과서인 DSM-5가 제시하는 이 장애의 주요 특징들이다. DSM-5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인성 및 비현실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증상을 말하기를 어려워하거나, 미쳐 간다는 두려운 생각도 흔히 한다. 이외에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거나 너무 느리게 간다고 느끼거나, 다양한 불안과 우울을 경험함도 흔하다. 의학의 설명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두통이나 어지러운 느낌도 이 장애의 부수적 특징에 포함된다.

때로 멍하게 있는 것을 이 장애로 보지 않는다. 이인증이나 비현실감을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경우는 흔하다. 진단은 증상이 적어도 1개월은 지속되거나 재발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충격받는 어린이를 관찰해주세요

그러나 아래 김 씨의 사례에서처럼, 어린이에게 1개월 미만의 급성 상태가 나타남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장애는 아동기에 시작될 수 있고, 평생 호전과 악화를 반복할 수 있기에 조기 발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DSM-5 연구자들에 의하면, 발생하는 평균 연령이 16세로 보고되었지만, 더 어린 나이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 현재 대학교 2학년인 20대 남성 김**은 초등학교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하던 즈음에 며칠간 비현실감 증상을 겪고,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때는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심한 분리감을 느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과거를,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와 말하게 된 이유는 이러하다. 최근 몇 개월 전 김**은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매우 우울해졌다. 당시 그는 감각이 없어진 것 같고,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울적한 기분은 사라졌지만, 점차 분리되는 느낌이 생겨 점점 더 걱정하게 되었다. 지난 3개월 동안 ‘평소의 자기’가 아니며, 마음이 텅 빈 느낌과 점차 몸에서 분리되는 느낌이 들고, 때로 사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헤매는 것 같고, ‘자기가 없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곤 했다. 이런 경험을 할 때 몇 시간 동안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두려웠다. 성적은 떨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점점 피했고, 친구의 눈에 ‘이상하고 동떨어져’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마침내 김 씨는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갔다. 그는 환각제 등의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검사결과에서 확인되었다. 전에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병적 증상 병력이 없다고 한다.(임상사례에서 발표된 내용 발췌)

# 한편 김 씨와 달리, 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흔히 동반되는 장애가 있다. 단극성 우울, 불안, 회피성 또는 경계성, 강박성 성격장애 등이 대표적이다. ‘이인성 및 비현실감 장애’로 진단되는 경우 외에, 이 장애의 일부 증상은 다른 장애와 관련된 증상인 경우들도 있다.

 

이러면 위험해요!

이 장애를 가진 이들의 공통점에 대한 연구를 보면, 위험을 회피하는 기질이 있고,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현실을 부인하고 적응에 어려움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DSM-5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장애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대표적인 것은 마음에 심각한 압박을 받는 것이다. 유발과 관련된 중요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많이 보고되어 온 것은 정서적인 학대와 방임, 공황발작과 같은 불안이다. 이외에 신체 학대, 가정폭력 목격, 정신질환이 있는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 친밀한 사람의 뜻밖의 죽음도 해당한다. 새롭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환경,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것, 때로는 조명(빛)과 같은 물리적 요인도 포함된다고 알려졌다.

어린이들이 이와 같은 위험 요소를 경험한다면, 주위에서 섬세한 관찰과 보호로 이 장애의 유발과 진행 여부를 발견하고 막아주어야 한다. 또한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반복해 사용하지 않게 돕는 교육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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