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특집]​ ​​미디어가 장애 혐오의 장이 되지 않게 하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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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특집]​ ​​미디어가 장애 혐오의 장이 되지 않게 하려면? ​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3.10.20 14:00
  • 수정 2023-10-1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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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강화를 촉구하는 흐름 속에서 자녀에 대한 정서적 학대를 의심해 교사를 고발한 웹툰 작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우후죽순 맥락을 삭제하고 왜곡하는 보도, 장애학생과 그 가족을 타깃으로 하는 보도가 미디어 속에서 쏟아졌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함께 ‘미디어가 장애 혐오의 장이 되지 않게 하려면’ 좌담회를 9월 21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 다모여 회의실에서 열었다.

언론, 장애 관련보도 소극적·혐오에 앞장···차별금지법 제정돼야

▲ 발제를 맡은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팀장(사진 왼쪽)과 좌담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사진 오른쪽)(사진제공: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 10살 발달장애아동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처럼 대해···아동 관련

보도 원칙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문제해결도 멀어져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웹툰작가 주호민 씨의 아들에 대해 지금까지 언론이 보도한 기사들은 ‘폭력을 행사하고 선정적인 행동을 일삼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10살 발달장애아동을 한국의 언론 기사들은 마치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처럼 대하고 있다.”며 “이는 아동에 대해 기사를 쓸 때 지켜야 하는 보도 원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가 발달장애아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용인 장애학생 학대신고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는 장애학생 통합교육의 역사와 시스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비난해도 저항하지 못하는 가장 약한 존재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 분노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것.

김 교수는 “이 사건을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인권이 대립하는 것인 양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잘못된 시각이며. 장애아동 부모와 특수교사가 법정 싸움을 벌이기 전에 미리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장애아동의 돌발행동이 문제 되거나, 부모와 특수교사 간에 감정의 골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모든 갈등이 소송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에 설치된 ‘장애학생인권지원단’이 피해를 예방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 인권지원단은 장애아동 관련 내·외부 전문가들이 모여 특수교사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돕고 대안을 제시한다.

장애아동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부터 교육청에 즉각 보고하고 인권지원단과 함께 논의했어야 하는데, 양측의 입장문 등을 종합하면 교육청이 조기에 개입한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

이번 사건이 교사와 학부모 간의 소송으로 번지자 주 작가 아들 A 군이 7월 말 서울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했다는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지자 육아카페와 주 작가의 SNS에는 “특수학교에 보내든지, 홈스쿨링을 시키든지. 아니면 외국으로 가세요.” 등의 비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김 교수는 “모든 교사가 선하지는 않고 모든 학생이 선하지도 않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인 공동체가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이 존재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의 문제점을 상세히 따져보지 않고 교사 개인과 학생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직관적이고 쉬운 일이며 그만큼 폭력적이고, 문제 해결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수학교에 보내든지, 홈스쿨링을 시키든지. 아니면 외국으로 가세요’라는 말은 내 눈앞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사라지라는 뜻”이라며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아동을 환대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숱한 좌절을 맛본 이들은 결국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며, 이 같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안 특수성 무시한 언론보도,

기자의 무지-교육부재가 원인

언론인, 장애인권교육 받아야

 

∎김수정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은 “유명인 학부모가 교사의 수업내용을 녹음하고, 교사를 아동학대로 직접 고소한 사건이어서 세간에 주목이 컸으며 장애아동을 둔 부모라는 특수성은 이해를 구하는 조건이 아니라 비난 여론을 더하는 요건으로 작용했다. 결국 장애아동 부모가 제 자식만 챙긴다는 부정적 편견이 쉽게 확대됐고 장애에 대한 혐오와 막말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언론은 자극적인 표현이 있으면 더 부각해서 기사를 쓰는 방식이고, 심지어 기사 제목으로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다. 문제 표현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돌발행동이나 과격행동 등 장애아동의 문제행동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 식의 보도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보도 방식”이라며 “언론의 역할은 교권 침해에 대한 문제 인식이 높아진 상황에서 학교 시스템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교육현장을 살펴보는 것”임을 강조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7조(방송의 공적책임) 8항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여야 하고, 제21조(인권보호) 2항은 심신장애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할 것, 3항은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재력·출신지역·방언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아니 되며,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등의 공적 책임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제23조(범죄사건 보도 등) 5항은 범죄사건 가해자의 정신건강 관련 정보 공개에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객관적 근거 없이 정신질환을 범죄행위의 원인으로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사안의 특수성을 무시한 언론 보도는 기자의 무지와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한 문제이기도 하다.”며 “장애학생의 장애에 대한 특수성을 이해하고, 통합교육과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 장애 유형과 장애 상태,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심화하는 표현을 구분할 수 있도록 언론인에게 장애인권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돼야” 함을 주장했다.

 

장애혐오 표현, 현행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도

책임 물을 수 없는 상황

차별금지법 등 입법 필요

 

∎김남연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국내 혐오표현과 관련된 사건에서 판례는 명예훼손죄보다 모욕죄로 처벌되는 경향이 크다.”면서도 “그러나 다소 왜곡된 역사적 기원, 사회·경제적 이유를 바탕으로 특정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불쾌감이나 편견을 드러내어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을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키는 표현의 형태인 경우 현행 법체계 안에서는 모욕죄로도 명예훼손죄로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임을 밝혔다.

장애인차별 구제청구소송의 경우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4월 ‘정신분열적 외교’, ‘외눈박이 대통령’ 등 장애 특성을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한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혐오표현에 해당하지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으며, 현재 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고착화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등 입법이 필요한 상황.

미국의 경우 수정헌법 제1조 관련 표현의 자유 보호 관점에서 연방 단위 혐오표현금지법은 없으나, 혐오표현이 실질적으로 차별로 변질되면 평등이론에 입각해 민권법, 장애인법,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등 개별법에 기반해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52년 Beauharnais v. Illinois 판결에서 “특정 인종·피부색·신념·종교를 가진 시민 집단의 부도덕성 또는 범죄, 부정(不貞), 부덕함을 묘사하여, 그 시민 집단으로 하여금 모욕 혹은 비방, 악평에 노출 시키거나 평화 교란이나 폭동을 발생시키는 표현물을 공공장소에서 판매·광고·출판·진열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리노이주 형법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즉, 집단에 대한 비방은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교권보호 상황과 맞물려 발달장애아동에 대해 자극적인 기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장애에 대한 혐오가 확대되고, 교육현장의 혼란과 대립·갈등을 가중시키고 근본적인 해법과 방향을 논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을 저해하고 있다.”며 “과연 교사와 장애아동 모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이고, 이 과정에서 언론이 정말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언론의 역할, 동료

시민으로서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 것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팀장(사진 왼쪽)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사회적 시선이며 언론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건드렸다.”며 “현재의 보도 양태가 촉발시킨 사회적 여론은 발달장애인 부모를 위축시키고 자녀의 행동을 혐오 행동으로 부각시키며 사회에서 영원히 배제되어 살라는 경고에 지나지 않다.”고 토로했다.

‘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은 평생에 걸친 과정이어야 한다. 주변의 증언이나 단편적인 행동으로써 촉발되는 사건들만 보고서는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한 인간이 보이는 의사소통 과정, 감각 수용의 정도, 행동과 정서적 반응 등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필요하다.

백 팀장은 “이를 거부해온 사회를 문제 삼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를 혐오하며 사회 구성원들을 갈라치기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언론의 모습을 이번 사태를 통해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며 “진정한 언론의 역할은 동료 시민으로서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 것”임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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