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 ‘약’은 ‘약’만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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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 ‘약’은 ‘약’만 되어라.
  • 편집부
  • 승인 2023.09.14 09:20
  • 수정 2023-09-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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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 '약'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모든 의약품에는 독성이 잠재되어 있다. ‘독성학’이란 학문 개론서에서 독성물질 범주 11가지를 소개할 때, 첫 번째로 제시한 것이 의약품이다.

약물치료는 사용 목적으로 볼 때 다음 넷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 첫째, 항생제 사용처럼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원인요법이거나, 둘째, 항고혈압제처럼 병의 원인을 제거하진 못하나 병에 의한 증상은 제거하는 대증요법이거나, 셋째, 백신처럼 병의 발생을 예방하는 요법이거나, 넷째, 호르몬, 비타민 등 신체 기능 유지에 필요한 물질이 결핍된 경우에 사용하는 보충요법이다. 이 모든 의약품의 효능 경험은 독성 발생 관리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의약품의 독성 종류는 발생원인별로 크게 5가지가 있다. 첫째, 의약품 고유의 독성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부신피질 스테로이드제는 강력한 염증 치료제이나, 동시에 당질 코르티코이드로서 쿠싱증후군이란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 질환은 치료 목적으로 장기간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복용해서 부신피질에서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과다하게 만성적으로 분비되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과용량 독성이다. 의약품이 적정용량 이상으로 투여되어 지나치게 축적되거나, 약물을 신장을 통해 배설하는 능력이 저하되거나, 약물의 대사능이 저하되는 것이 주원인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 의해 약물 혈중농도가 급상승하면 위험에 빠진다. 의약품은 흔히 ‘용량’에 따라 독이 된다. 예를 들어, 진통 해열제로 많이 사용되는 ‘아세트아미노펜’은 몸 안에서 간에 해로운 ‘NAPQI’라는 반응성 중간물이 된다. 다만 치료용량 범위에서 복용하면 글루타티온이란 항산화 물질이 NAPQI의 독성을 무력화하며 쉽게 배설되기에, 용량만 지키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과다복용하면 간세포의 괴사가 일어난다. 간의 글루타티온 저장고가 고갈되어 NAPQI가 세포와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셋째, 약물의 용량과 관계없이 피부나 점막에 발진이 일어나는 등의 약물 과민증 종류이다. 약물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이나, 알레르기 이외의 유해반응을 통합해 약물 과민증이라 부른다. 가장 심한 위험은 생명에 위협이 되는 전신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쇼크이다. 약물 알레르기는 항생물질에 의한 것이 가장 많다.

넷째, 약물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독성이다. 협심증 치료제 ‘니트로글리세린’과 발기부전 치료제 ‘실데나필’을 함께 복용하면 혈압강하 효과가 너무 커져 심한 저혈압이 될 위험이 커지는 것이 한 예이다. 실데나필은 혈압강하 효과가 있어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될 때가 있다.

다섯째, 유전자 특이체질로 인한 약물 반응 이상의 독성이다. 같은 약물이라도 인종별로 약물 대사능 차이가 있을 수 있어 나라별로 의약품의 승인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종합해 보면 용량, 시간, 유전적인 감수성이 약물 부작용의 예방을 위한 관찰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의약품의 독성이란 표현 대신에 부작용이란 말을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텐데, 독성학에서는 ‘부작용’과 ‘유해작용, 독성’이란 용어를 구별한다. 부작용은 기대한 치료 효과 이외의 모든 작용을 통칭하며 상황에 따라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로써 소화성 궤양 치료를 위해 위액 분비를 감소시키는 아트로핀 제제는 수술실에서 마취 때 침 같은 점액 분비를 감소함에도 사용된다. 아트로핀으로 위를 치료할 때 나타나는 입마름은 부작용이나, 수술실에서 느끼는 입마름은 바람직한 작용이 된다. 반면에 유해작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작용, 독성이다.

이처럼 약이 독이 되는 원인을 보면 마치 ‘인생 거울’을 보는 느낌이 든다. 인생에도 아트로핀의 입마름처럼 상황 따라, 불리했던 것이 유리한 일로 바뀌는 때가 있다. 또한 유해작용처럼 언제나 나쁜 것으로 평가할 ‘악’도 있다. 그런데 몸에서 약이 독이 되는 현상은 알아볼 눈이 있지만, 왜 우리 사회에 언제나 나쁜 유해작용, 독성이 무엇인지는 찬반 의견이 갈리는 것일까? 몸의 생명에 대한 기준이 명료하기에 독을 알아보는 것처럼, 사회의 생명에 대한 기준도 합의되어 있다면, 사회에 무엇이 약이며 무엇이 독인지 분명해지지 않을까? 특정 상황의 위험성 평가나 사회에 해로운 것의 기준 자체에 대한 다툼이 만연해지는 현상은 ‘혼란’이다. 약이 독이 됨도 몸의 혼란이듯이. 몸과 사회의 ‘악·독’에 대처하는 지혜를 독성학에서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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