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질문을 넘어 자립으로… 비로소 지역사회에서 유의미한 존재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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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질문을 넘어 자립으로… 비로소 지역사회에서 유의미한 존재 되기
  • 편집부
  • 승인 2023.07.20 09:40
  • 수정 2023-07-18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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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신_시인, 자립장애인

한 아이가 태어나 사회의 일원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수많은 질문과 수많은 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질문에 어떤 답을 들었냐에 따라 그 아이의 길은 늪이 될 수도, 숲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도 수많은 질문이 있었고, 그에 맞는 답을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도 답을 줄 수 없었기에 그 모든 질문을 꿀꺽꿀꺽 삼켜야 했다.

40년이 훌쩍 넘는 세월과 함께 삼켜온 질문들이 쌓이고 쌓여 더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절벽의 끝에 이르렀을 때, 지인을 통해 활동보조제도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내 질문들에 답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터라 고민에 고민을 보태는 밤들을 보낸 후 마음을 다졌다. 난생처음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독립을 결정한 것이다.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걱정 반, 두려움 반을 씻어내듯 초조하게 흐르던 시계의 바늘은 어느새 나를 조그마한 원룸으로 옮겨 놓았다. 말이 원룸이지 천장 가까이에 창문 하나 달랑 있는 방이었다. 그런데도 좋았던 것은 누구의 눈치도, 누구의 간섭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었고 태어나 처음 맛보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현재 이용 중인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연결되어 활동보조사를 만나게 되었고, 며칠의 탐색전(?)을 마친 뒤 나의 질문들을 세상에 던져 보기로 했다. “나는 왜 방구석에 누워만 있지?” “나는 왜 학교에 갈 수 없지?” “나는 왜 소풍을 갈 수 없지?” “나는 왜 친구가 없지?” “나는 왜 교복을 입을 수 없지?” “나는 왜…?” 물으면 혼쭐만 날 것 같아서 삼켜왔던 질문들의 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얘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터라 혹 40 중반의 나이인데 쫓겨나지나 않을까, 얼굴에 부끄러움 가득 칠하고 야학을 찾아갔다. 우려와는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상담을 마친 후 교실들을 둘러보니 대부분 장애가 심한 학생들이었고, 그중에는 형님뻘 돼 보이는 분도 계셨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야학은 참 오래도 다녔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배움보다 함께 어우러짐이 좋아서, 무엇보다 나의 질문들을 쏟아내고 답을 들을 수 있어서 시간 가는 것을 잊었다. 방구석을 벗어났고, 학교에 다녔고, 소풍을 갔고, 벗들이 있었고, 2년 만에 검정고시로 중학교까지 졸업했다.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다 들은 셈이다.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은 나는 장애인복지관 글동아리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해마다 시화전을 개최해 오고 있으며, 아이들 인성교육을 위한 동화책을 여섯 권이나 펴냈다. 자료를 손수 만들어 유치원을 찾아가는 장애인식 교육을 했고, 2년 전에는 시집도 출간했다. 이 글동아리 또한 나의 질문들에 많은 답을 들려준 벗인데 수박 겉핥기식 자랑이라 아쉬울 뿐이다.

오늘까지 나의 삶을 활동보조를 받기 전후로 나누라면 지옥과 천국이다. 지옥은 나의 질문을 스스로 삼켜버렸을 때이고, 천국은 삼켜버렸던 나의 질문들을 세상에 던졌을 때이다. 왜냐 하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이는 하늘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나의 물음들을 삼키기만 했었는데 우물을 박차고 나와 여느 사람들처럼 나의 물음들을 세상에 던져 놓고 오감을 열어 답을 느꼈을 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지역사회의 유의미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활동보조사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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