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소개]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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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소개]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6.08 09:56
  • 수정 2023-06-08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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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바버라 아네일, 낸시 J. 허시먼
옮긴이: 김도현
펴낸날: 2023년 5월 22일
펴낸곳: 후마니타스

장애가 비단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공론화된 사실이다. 하지만 장애가 정치라는 학문을 통해 조망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 출발, 장애의 정치학적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정치학 교수인 바버라 아네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 교수인 낸시 J. 허시먼이 엮은 책을,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의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고 노들장애인야학 부설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의 연구활동가인 김도현이 옮겼다.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다소 어렵지만, 우리의 일상이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그리하여 ‘장애’가 학문으로서 ‘장애학’이 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정치학’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지평을 열어주는 책이다.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는 정치이론 분야의 손꼽히는 학자들이 ‘장애’와 관련된 쟁점들을 다룬 논문들을 모은 책이다. 논문들은 칸트, 롤스, 아렌트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상과 정치이론에서 권위 있는 인물들의 주요 저작을 통해 장애를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그에 더해 장애가 자유, 권력, 정의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들을 정의하는 데 어떻게 활용돼 왔으며, 또한 이를 통해 근대적인 정치적 주체가 장애인들을 배제한 채 어떻게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살펴보고 있는 여러 근대 정치사상 중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롤스(제3장 “롤스의 정의론에서 장애의 부인과 그의 비판가들”)의 경우, 일차적으로 도덕적 행위 주체의 ‘정상적인’ 지적 능력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장애를 소환한 후, 이차적으로 사회 성원권과 정의에 대한 요구권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데, 이 같은 ‘이중적 부인’(도덕적 행위 주체에 대한 부인, 사회 성원에 대한 부인)을 통해 롤스는 의도적으로 근대적·합리적 주체의 범주에서 장애 정체성을 누락시키고 있다.

이같이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의 근간을 설정한 중요한 정치사상의 고전들 역시 근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장애인 주체를 정의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활용해 왔으며, 이를 통해 비장애인들을 정치적 주체에서 배제해 왔음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장애가 현대사회와 정치문제에 대한 세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방법을 보여주며 가능한 길을 제시한다.

다시 말하건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읽는다면 현대사회의 ‘장애’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에 더해 장애에 대한 차별이 정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정치학이란 학문이 어떻게 조장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왜 우리가 장애학을 정치학의 관점에 조망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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