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경이로운 사랑을 몸이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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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경이로운 사랑을 몸이 알려준다
  • 이창선 기자
  • 승인 2023.04.06 10:25
  • 수정 2023-04-0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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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모든 세포는 하나의 수정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인체의 세포 구조가 광범위하고 몸에서의 기능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1개나 되는 기관계(피부계, 뼈대계, 근육계, 신경계, 내분비계, 심혈관계, 림프계, 소화계, 호흡계, 비뇨계, 생식계)로 이뤄진 내 몸의 첫 출발은 엄마, 아빠의 난자, 정자가 엄마 골반 안의 나팔관에서 만나 형성된 수정란이었다. 수정란의 모습을 한 때가 내 인생 시작 1일이었고, 50~56일 기간에 내 얼굴은 비로소 사람다워졌으며 꼬리는 사라졌다. 수정란은 30억 쌍 염기대(base pairs)의 DNA를 갖고 이 중에서 약 3만 개의 유전자 조절을 받으면서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중에 뇌가 만들어져가고, 이외에 장기들이 형성되어간 것이었다.

발생 9주부터 태어나기까지 기간인 ‘태아기’가 되기 이전에, 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배아(embryo)’의 모습이었다. ‘Langman’s Medical Embryology’라는 도서에서 제공한 발생 18일 차 된 배아의 사진을 보면, 배아의 길이는 1.25mm, 폭이 가장 넓은 부위가 0.68mm이었다. 이러한 배아의 모습에서 태아로 성장한 것 자체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경이로운 인생을 산 것이란 생각이 든다. 놀랍게도 몸의 각 장기의 출발은 너무도 작은 세포와 전구체들이었다. 나의 발생 3주~8주 사이는 몸의 모든 장기를 형성할 세포와 전구체가 생기고, 중요한 기관계통이 모두 형성되는 중대한 시기이며, 동시에 선천 기형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이 높은 때였다. 이 시기에 매우 빠르게 세포들이 분열하고 중요한 세포 사이 신호전달이 이뤄지기에 유해한 환경이나 엄마의 약물중독 등의 바깥 요인에 의해 내 몸은 쉽게 손상받을 수 있었다.

사람발생학 연구자들은 발생 3주가 몸의 조직과 기관을 형성하는 종자층인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이 배아에서 모두 완성되는 놀라운 시간이라고 말한다. 일명 ‘창자배형성 과정’. 이 세 가지 배엽을 매우 간단히 소개하면 외배엽에서 신경세포가 발달하고, 중배엽은 근육세포, 혈액의 적혈구 세포 등을 만들고, 내배엽은 폐 세포와 갑상샘 세포, 췌장의 분비세포 등을 만들었다. 발생 3주 기간에 일어나는 체계적인 일련의 과정들은 ‘사람발달학’ 전문서적 10쪽 분량으로 가득히 제시될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하며, 너무도 다양한 유전자들과 섬유모세포성장인자(FGF), 신호전달연쇄반응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5HT)등이 참여한다.

그런데 이 복잡한 과정을 읽다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두 부분이 보였다. 첫째, 인체의 모든 기관을 태어나게 하는 종자층인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의 형성 시작이 배아덩이 위에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는 줄무늬가 나타남으로써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원시선이란 이름의 이 줄무늬는 세포의 이동과 특성화를 조절할 섬유모 세포 성장인자 8(FGF8)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인체를 이루는 본격적인 출발과정이 한줄기 희미하게 보이는 선의 출현에서 시작하고, 생명을 조절하는 중요 인자가 그 선에 담겼다는 것이다. 인체 이야기가 역사에 교훈을 준다고 믿을 때, 원시선 이야기는 사회에 생명을 주는 변혁이 진정한 삶을 갈망한 소수의 미미한 소모임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을 연상하게 했다. 영국에서 노예제를 폐지했다는 윌버포스의 소모임처럼 말이다.

둘째, 복잡한 과정이 실제로는 너무도 정교하고 꼼꼼한 일련의 반응들이란 점이 큰 감동을 주는 면이었다. 일례로서, 뇌의 출현과정을 보면, 원시선 맨 앞에 장차 신경계를 만들 기본인 신경판이 형성되고, 신경판의 가운데가 깊어지면서 신경구를 만들고 2.5mm 정도 발육하더니 신경주름으로 발전하고, 신경주름은 더욱 깊어지면서 자연히 양옆이 말려 올라가게 되며 서로 만나 결합해 4주 경에 2mm 정도의 신경관을 형성하고, 이 작은 신경관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뇌가 형성되는 본격적인 과정들이 출현했다.

인체의 이야기가 내 삶과 역사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고 여길 때, 사람 발생의 과정에 대한 문헌들을 읽으면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경이로운 사랑을 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포들은 힘을 다해 협동하여 나를 만들었고, 그런 정교한 인체의 형성과정은 우연에 의해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어떤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란 생각이 밀려온다. 인간은 겉모습이 어떠하든 부모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라는 말을 사람발생학은 뒷받침하는 것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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