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희망의 증거를 보여줘 / 에세이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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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의 증거를 보여줘 / 에세이부문 최우수상
  • 편집부
  • 승인 2009.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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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환한 희망의 햇살을 꿈꾸며<후편>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사장 김선규, 이하 공단)은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과 장애인고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조성을 위해 지난 4월 20일부터 7월 20일까지 에세이, 디자인, 영상 부문에 걸쳐 제18회 ‘희망의 증거를 보여줘’ 공모전을 시행했다.

각 부문 최우수, 우수, 장려상 등 총 27명이 수상했으며 본지는 수상작 중 장애인의 직업과 관련된 주제의 에세이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태욱 씨의 작품을 전편에 이어 후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김태욱 作
 “김 보호사님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일을 그만두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성심껏 일을 해오신 것을 알기에 저는 김 보호사님과 같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 일은 다른 직원들이 알게 되면 김 보호사님께서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으실까 크게 우려되어 저와 수간호사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지금껏 해주신 대로 성실히 근무에 임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오늘과 같은 일이 다시는 없도록 주의 바랍니다.”


 정신장애를 안고서도 떳떳이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인정을 받은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나중에 장애인 복지카드가 어디 있었나 해서 알고 보니 1층 간호사실 문 앞에 떨어져 있었던 것을 수간호사가 출근을 하면서 주웠다고 들었다. 2층에 근무하는 나는 밤근무를 하며 1층도 돌아봐야 했기에 1층 간호사실 문 앞에 장애인 복지카드가 떨어졌던 것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없어졌던 장애인 복지카드로 인해 숨기고 싶지 않지만 숨길 수밖에 없었던 마음 한 구석에 박힌 정신장애라는 따가운 가시를 뽑아낼 수 있었다. 그 후 더욱 적극적으로 환우들을 내 가족처럼 정성스레 돌보았다. 다시 내게 일할 기회를 주신 병원장님께 감사를 느꼈고 또한 환우들에게도 감사를 느꼈다.


 나는 2년을 조금 넘은 시점에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에 병원 보호사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있었던 사회복지시설에서 알게 된 두 명의 정신장애우를 병원장님께 추천을 하였다. 30분이 넘게 면접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는 두 명 모두 합격이었다.

 병원장님께서는 정신장애인이지만 책임의식이 강하다는 것과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자신들의 몸을 돌보듯 잘 돌보겠다는 그들의 굳은 의지에 크게 인상을 받으셨다는 점을 말씀하셨다. 병원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나를 통해 보호사로 취직을 하게 된 두 사람의 정신장애우와 더불어 한마음으로 기뻐하였다.


 보호사로서의 경험이 나에게는 커다란 두 가지를 안겨 주었다. 그 첫 번째는 나도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둘째는 비장애인들의 장애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또한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몸과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불편할 뿐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을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거리감을 두는 일부 비장애인들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뒤바꿔 놓을 수 있을까? 하며 내 자신에게 수 백 번이고 되묻게 되었다.

또한 나도 약을 먹으며 사회생활을 올바르게 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마찬가지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도 자기 나름대로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나가며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일부 비장애인들은 겉으로는 동정심을 나타내며 친절하게 대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우리 장애인들 발 앞에 선을 그어 아무에게도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이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의 현실을 접할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내 마음에 서글픔이 극에 달하곤 한다.


 반면에 각 지역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각종 프로그램과 홍보를 단행하며 비장애인들의 장애인들에 대한 관념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단기적인 기획보다 현실적인 방법에 입각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서로 주기적으로 만나 대화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질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 활성화시켜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보호사 일을 그만두고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노인요양원에서 1개월간의 기간동안 하게 되어 있는 직장체험식 자원봉사로 이른바 노인돌보미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 곳에는 치매와 중풍 등으로 들어오신 어르신들이 대다수였다. 나는 그 곳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걷기 운동과 산책 등을 병행하며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한 번은 말은 하실 수 있지만 몸 전신이 마비된 할아버지께서 목욕을 할 시기가 되어 목욕을 시켜드리고 있었다. 몸에 비누칠을 해드리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이봐! 자네 나이가 몇인가? 내가 여기 5년을 있었는데 자네같이 젊은 사람은 처음이야. 자네 복 받겠어.” “할아버지, 이렇게 일을 하며 어르신들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큰 복이에요. 할아버지께서는 몸이 불편하시지만 저는 마음이 불편한 정신장애인이거든요.”

“그랬구먼, 자네는 나를 이렇게 도와주는데 나는 몸이 이래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될지 모르겠구먼. 그래도 마음이 답답할 땐 이 늙은이한테 다 얘기해. 자네의 답답한 심정을 들어주기라도 하면서 자네를 도와줘야 되지 않겠어.”


 그 당시 노인돌보미를 하면서 남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깨닫게 되어 그 사랑이 나를 한층 더 거듭나게 만들었고 내 마음속에 충만하게 들어차게 되었다.


 노인돌보미를 끝내고 얼마 후 취업을 할 생각에 인터넷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구인정보를 올렸지만 그 중에서 나는 고졸이상의 학력에 문서관리직을 모집하는 국내에서 10대안에 들어가는 S그룹 서류전형에 응시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여기 S그룹 인사팀입니다.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셨구요. 모레 2차 면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12층 대회의실로 오시면 되고 오후 3시까지 늦지 않게 오십시오.”


 그 순간 지원했던 회사에 입사가 결정이라도 난 듯 혼자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면접일의 아침이 급기야 밝아왔고 이른 아침부터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정장을 입고 부산을 떨었다. 시간이 되어 면접장소로 이동했고 내 기억으로 그 당시 면접전형에 나온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총 20명이었다.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해도 단 한 명만을 뽑는 2차 면접에서 여기와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제치고 내가 합격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스스로 여겼다. 그리고 그 당시에 면접을 봤을 때는 이력서에 정신장애 3급이라고 기입하면서 내 자신이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 후 면접실로 들어갈 차례가 되어 들어가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지만 그 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한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김태욱 씨는 정신장애인이시고 일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 본인 생각을 말씀해 보시죠.”

“저는 항상 장애인답지 않은 장애인으로 살겠노라고 굳게 다짐하며 지내왔습니다. 채용하여 주신다면 항상 귀사를 위해 부지런한 일꾼이 되겠으며 힘든 시기가 닥쳐와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라고 자신감 있게 말을 하고 면접을 끝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으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 본 면접이었다. 면접을 보고 일 주일 남짓 됐을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S그룹 인사팀입니다. 김태욱 씨 합격 축하드립니다.

내일 주민등록등본,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사진 2장 가지고 출근하시면 됩니다.”


 나는 그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단 한 명만 뽑는 곳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어렵게 얻게 된 일자리인 만큼 그에 상응하게 열정을 가지고 현재까지도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 내게 의문점이 생기곤 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비장애인이었을 텐데. 또한 최종학력도 나는 고졸이지만 그때 왔었던 사람 중에는 대졸자도 있었을 테고, 더군다나 나에게는 아직은 사람들이 멀리하는 정신장애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 라고 말이다.

면접관들의 선택이라 굳이 내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으므로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야 말로 나의 재산목록 1호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정신질환을 앓고 난 후 입사한 나의 직장이야말로 과연 그렇다. 정신장애인으로 평생 살아갈 내가 이렇게 좋은 국내 대기업에 취업을 하여 다니고 있으니 억만장자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나는 이 곳에서 일을 하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장애인들도 나처럼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을 했음 하는 그런 바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히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내가 다루지 못할 사안이기에 조금 서글프긴 했다.


 그런데 3년 후 그런 바람이 헛됨이 아니었음을 누군가가 내 앞에서 반증이라도 하듯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계열사인 S엔진사에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제1기 기술직 장애인 특별채용이 생기게 되어 내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나 한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겠지만 어찌됐든 나도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같이 일하게 된 것이 늘 기쁘기만 했다. 그 후 지금 현재 그 계열사에 장애인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약 30여명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장애인들이 같은 회사에 입사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와 같이 비장애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장애인들과 손을 맞잡고 공존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 질것이다. 허황되지 않고 참된 희망은 이루어질 수 있기에 희망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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