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까 VS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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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까 VS 할 수 있을까
  • 편집부
  • 승인 2009.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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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민/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관 직업재활팀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실습을 앞두고 있었다. 내담자를 직접 만나 상담을 한다는 것은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는 아주 부담스러운 과정이었다. 특히, 대학원에서 이제 겨우 한 학기만을 공부한 나는 영어에도 크게 자신이 없었고 미국 문화에도 그렇게 익숙지 않은 상태에다가 가장 큰 문제는 ‘시각장애’라는 요소를 내면적으로 너무나도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첫 내담자를 만나기에 앞서 내가 내담자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너무도 압도되어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훨씬 더 불리한 조건으로 상담에 임해야 하며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내가 한 행동이라곤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 심리상담사가 있다면 나에게 큰 표본이 되리라 믿고 그 존재를 찾는 것이 유일했다.


 인터넷을 비롯해 여러 방법으로 수소문해보았지만 결국 미국 내 시각장애인 심리상담사를 찾지 못했다. 고민 끝에 이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님을 찾아가 내 사정을 설명하고 내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심리상담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내 하소연 섞인 질문에 대해 돌아온 교수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네가 원하는 것이 뭐지?” 대답은 당연히 심리상담사였다. “그럼 심리상담이 적성에 맞니?” 역시 대답은 적성에도 맞고 하고는 싶은데 그 가능성을 장담 못하겠다는 것 이었다. 그때 잠깐의 시간을 두고 교수님이 이렇게 말했다. “됐어, 무엇을 할지도 정해졌고 또 하고도 싶다니 그냥 하면 되고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자.”


 이 짧은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내 생각의 습관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늘 내가 취해야할 행동의 방향을 정할 때 마다 실현가능성을 생각하고 목표는 그 다음이었던…즉, 습관적으로 ‘어떻게’라는 질문을 먼저 생각하고 여기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그 다음으로 ‘무엇’을 생각하는 식이었다.


 현재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직업재활 상담을 하면서 나는 이용자들로부터 이런 생각의 패턴을 많이 보게 된다. 우리 복지관에는 성인이 되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실명을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와 같은 대부분의 중도 실명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심리적 상태가 소위 말하는 ‘심리적 공허’이다. 이들을 상담하고 기초재활을 돕는 과정에서 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거의 모든 대답은 “지금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나 있겠습니까?”이다. 즉, ‘무엇’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을 한다. 아울러 그들의 대답 속에는 현재 상황에서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비관적 현실인식도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실존주의 심리 치료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은 오늘날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는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의 안전을 담보하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과거의 동물적 본능을 상실하고 행동의 지침이 되었던 전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실존적 공허는 인간이 진실로 인간이기 때문에 입어야 할 ‘이중적인 손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의 혹독한 수용소 생활을 견디며 발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 가지 방법들 중의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중도 시각장애인들의 실존적 공허감 이면에는 시각장애라는 개인적 불행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열악한 복지 서비스나 빈곤한 지원체계 등이 자리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모든 현실적 어려움이 인간의 삶의 목표에 대한 의지까지 삼켜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의 현실에서 ‘어떻게’라는 가능성에 대한 대답이 불투명하고 부정적일 때 질문의 순서와 내용을 바꾸자. 지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서 다시 묻자. 내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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