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대한 단상
상태바
우울증에 대한 단상
  • 편집부
  • 승인 2009.08.24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유진 / 가천의과대 길병원 정신과 임상교수, 인천시 정신보건센터장
▲ 이유진 / 가천의과대 길병원 정신과 임상교수, 인천시 정신보건센터장

 명문대를 졸업하고 예쁜 신부까지 아내로 맞이해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30대 A씨는 잘 나가는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유능한 공학박사였다. 남들 보기에는 그저 평탄하기만 한 삶을 살고 있던 그는 3달여 전부터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사소한 일에 걱정이 많아졌다. 직장에서 지난해 근무실적이 좋아 올해 맡게 된 새로운 프로젝트는 남들에겐 A씨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사실 그에겐 걱정거리 일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속의 걱정, 불안이 점점 커져만 가는 거다. 예전 같았으면 별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처리했을 정도의 일인데, 왜 이리 불안하고, 초조하고, 한없이 자신없게 느껴지는지….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밤에는 잠도 이루지 못하기 시작했다. TV를 보면 별로 슬픈 장면도 아닌데 눈물이 나고 아내와 아이에겐 짜증이 부쩍 늘어 사소한 일에 화를 내기 일쑤였다. 아내는 A씨에게 정신과에 가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고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사실 그에겐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던 누나가 있었다. ‘정신과 환자’인 누나가 있는 것이 부끄러워 결혼 3년째인 아내에게도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할 만큼 자존심 강한 그였다. 또한, 우울한 A씨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터라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아무 효과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정신과 병원에 가는 것이 참 싫었다.


 사실 이 환자는 내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가족의 이야기다. 6년이 지난 지금도 A씨의 이야기가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결국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우울한 A씨의 이야기를 수개월간 들어주고, 달래고, 설득해오던 그의 아내가, 그 날 아침 살고 있던 20층 아파트 옥상에서 누군가 투신했다는 관리실 방송을 들었을 때,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것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아직 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님, 내가 정신과 의사라서 그가 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은 평생 동안 30~40%의 사람들이 경험할 정도로 흔한 병이다. 원인은 세로토닌, 노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의 부족, 유전적 소인,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사회의 저명인사나 재벌, 유명인 등 우리가 보기엔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런 것을 보면 우울증은 ‘마음의 병’임이 틀림없다. 적절한 치료로 70-80% 정도의 환자는 회복에 이르는 ‘마음의 감기’일 뿐이다.


 하지만, WHO 자료에 따르면 그 질병부담이 2020년에는 심혈관계 질환에 이어 2위가 될 것이라고 예측되는 중요한 질환이다. 그러니, 제발 무슨 커밍아웃 하는 것 마냥 말 못할 비밀을 털어놓듯 유명인이 우울증에 걸렸었다는 것이 더 이상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시선이 부담스러워 치료하지 못한 ‘묵은 감기’에 시달리다 극단적 합병증을 겪게 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의사에게 처방받아 ‘감기약’을 먹는 것을 보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