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내 친구, 다음 여행지에도 동행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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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내 친구, 다음 여행지에도 동행 할 것”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0.07.01 16:50
  • 수정 2020-07-07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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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현 발달장애 작가 & 어머니 김선화 씨

본지는 발달장애인 청년들의 예술 활동을 응원하고 그들의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됨으로써 장애인예술의 이해와 대중화를 이루기 위한 특별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에 전시회 ‘발달장애인 청년작가전2020: 보고…다시 보고’에 참여했던 19세부터 34세 발달장애인 청년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작품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지가 두 번째 만난 작가는 로봇친구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일상에서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내는 박태현 작가다. = 차미경 기자

로봇과 인형 만들기와 색테이프를 활용한 '테이프 화' 작품활동 이어가는 박태현 작가
로봇과 인형 만들기와 색테이프를 활용한 '테이프 화' 작품활동 이어가는 박태현 작가

비가 내리던 날 만난 박태현 작가는 자신이 만든 로봇과 인형 작품들을 한아름 들고 인터뷰 장소로 들어섰다. 박태현 작가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로봇과 인형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소통의 통로 같았다.

어린 시절 가슴을 설레게 했던 로봇 만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박태현 작가 역시 로봇은 유년시절 친구이며, 이는 곧 세상과 그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박태현 작가의 어머니인 김선화 씨는 박 작가의 첫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느 남자아이들이 그러듯 태현이도 어려서 로봇을 좋아했어요. 형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로봇장난감을 관찰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죠. 아마 태현이의 첫 작업은 로봇을 A4용지에 그려서 가위로 오려 종이 인형처럼 가지고 노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렇게 평면으로 가지고 놀던 로봇종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입체적으로 바뀌고,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관절이 생기고 하면서 지금의 작품들이 완성된 거죠.”

박태현 작가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어머니 김선화씨의 말대로 ‘입체감’에 있다.

로봇과 인형작품의 경우 평면이었던 종이 인형 위에 종이를 덧 붙여서 볼륨감을 주고 나무 젓가락 뼈대로 사용해 두꺼운 종이박스를 붙여 조금씩 입체감과 형태감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한 로봇과 인형을 만들었다.

박태현 작가의 놀라운 점은 이것 뿐 만이 아니다. 박 작가는 로봇을 만드는 과정에서 밑그림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박태현 작가는 작품활동 시 따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바로 가위질을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뷰 현장에서 기자를 위해 만들어 준 종이 로봇(오른쪽), 어떤한 밑그림 없이 가위질과 투명테이프 만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박태현 작가는 작품활동 시 따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바로 가위질을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뷰 현장에서 기자를 위해 만들어 준 종이 로봇(오른쪽), 어떤한 밑그림 없이 가위질과 투명테이프 만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실제로 박 작가는 기자와 어머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로봇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색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오려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가위질을 한 색종이 조각들을 자연스럽게 테이프로 연결하자, 놀랍게도 로봇의 형체가 만들어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밑그림 없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바로 작업에 연결하는 모습은 박태현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활동이 ‘테이프 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테이프 화’는 박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색 테이프로 그림을 만드는 것으로, 현재 박 작가가 주로 하고 있는 작품 활동이다.

이번 ‘발달장애인 청년작가전2020: 보고…다시 보고’ 전시회에서 선보였던 ‘까치와 호랑이’ ‘오로라 여행’등의 작품이 바로 색테이프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며, 이 작품들 역시 밑그림 없이 작업됐으며, 입체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까치와 호랑이,41 x 60,파넬, 화장지, 색테이프,2018호랑이의 얼굴과 까치의 부리 부분에 휴지를 넣어 입체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까치와 호랑이,41 x 60,파넬, 화장지, 색테이프,2018호랑이의 얼굴과 까치의 부리 부분에 휴지를 넣어 입체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색 테이프를 겹쳐서 붙이는 정도 등에 따라 색감과 음영이 달라지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박태현 작가의 예술성과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테이프 화 역시 밑그림 없이 태현이의 손끝에서 그림이 시작된다고 보시면 되요. 특히 ‘까치와 호랑이’ 작품을 보면 호랑이는 얼굴, 까치는 부리가 포인트잖아요. 태현이는 그 포인트를 살리기 위해 호랑이 얼굴에 휴지를 뭉쳐 넣은 뒤 그 위에 테이프를, 까치는 부리에 휴지를 넣고 테이프를 붙이는 방법으로 입체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에요.”

밑그림 없이 진행되는 작업이다 보니 의도한 대로 그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에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 어머니 김선화 씨는 아직도 신기하고 놀랍다고 말했다.

이처럼 항상 새롭고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박태현 작가의 영감의 원천은 바로 ‘여행’이라고 한다.

“태현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해요. 여행을 다닐 때도 자신이 만든 로봇과 인형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여행지를 배경으로 로봇과 인형들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자신이 눈과 마음속에 담은 풍경을 다음 작품에 투영하기도 하죠.

실제로 박태현 작가의 작품 중에는 베트남의 하롱파크, 인도네시아의 따만사파리, 터키와 일본의 도심의 모습을 표현한 ‘테이프 화’ 작품도 적지 않다.

박 작가에게 여행은 이처럼 영감을 얻기 위함도 있지만, 또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박태현 작가는 현재 발달장애인 작가들이 근무하고 있는 ‘디스에이블드’에 고용되어 있는 작가다.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을 굿즈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 곳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급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급여로 그의 다음 여행지가 결정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 작가는 집에서는 물론 주 1회 아뜨리에플레이투게더(A.P.T) 작업실을 찾아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가끔 작품 활동에 게을러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열심히 작품 활동해서 터키가야지’라고 말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작업에 몰두해요(웃음). 비장애인 직장인들이 월급날, 휴가를 기다리면 힘든 회사생활을 이겨내는 것과 같은 거죠.”

실제로 어머님과 인터뷰 중 옆에서 테이프 화와 작업을 계속 이어가던 박태현 작가는 중간 중간 “이거 완성되면 팔아”라고 여러 번 얘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완성한 작품이 판매되고, 그로 인해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르네상스,110 x 96, 판넬, 색테이프,2017
르네상스,110 x 96, 판넬, 색테이프,2017

김선화씨는 박태현 작가가 이미 특화된 작품과 예술성으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일본 등에서 여러 번 전시회를 가진 배테랑 작가이지만 그렇다고 고민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태현이 같은 경우는 그래도 소속되어 있는 회사가 있어 급여도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전시회는 태현이 같은 발달장애인 작가들을 세상에 알리고 작품 활동의 결과를 선보일 수 있는 자리이긴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하거든요. 발달장애인 작가들이 자신들의 특화된 재능을 활용해 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서는 ‘판로’ 개척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그것이 수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봐요.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단순히 순수미술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계의 수단으로 생각함으로써 정상적인 고용형태가 보다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올해 28살의 박태현 작가는 로봇과 인형들과 매일매일 소통하고 있다. 여행지에 갈 때마다 로봇과 인형을 가지고 다니는 것 역시 세상으로 나가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그의 바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밑그림과 도안 없이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박태현 작가를 보고 있으면,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을 다음 작품의 모습이 한 없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곧 거침없이 종이와 테이프를 잘라 붙여나가는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느새 팬이 되어버린 기자 역시 박태현 작가의 바람대로 그의 작품이 많이 팔리길, 그래서 더 많은 곳을 여행한 후 또 우리를 설레게 할 다음 작품을 선보여줄 그날이 오길 간절히 응원한다.

박태현 작가와 그의 든든한 지원군인 어머니 김선화 씨
박태현 작가와 그의 든든한 지원군인 어머니 김선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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