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건법상 ‘경찰개입’ 조항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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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건법상 ‘경찰개입’ 조항 타당한가
  • 임우진 국장
  • 승인 2016.06.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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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서울 강남역 인근 20대 여성 살인사건이 큰 사회문제로 공론화되면서 장애계까지 불똥이 튀어 정신장애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여성계가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하고 나선 반면, 경찰과 검찰이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하고 나선 것. 급기야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경찰관이 치안활동 중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정신병원을 거쳐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해 ‘행정입원’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정부는 지난 1일 경찰이 정실질환자의 ‘응급입원’ 조치, ‘행정입원’ 요청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여성 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내놨다. 경찰관의 현장 판단만으로 특정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신장애계와 사회단체가 우려와 함께 강력 반발하고 나선 이유이다.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냐, ‘묻지마 살인’이냐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면서 생소한 ‘조현병’과 ‘행정입원’ 용어가 새롭게 조명됐다. 가해자가 조현병(調絃病)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면서부터다.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2011년 정부가 바꾼 병명이다. ‘조현’은 현악기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잘 조율되면 정신의 부조화도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담은 조어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요양시설에 입원할 때는 자의입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 의한 입원, 응급입원 등으로 나눠 입원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지자체장에 의한 입원’이 ‘행정입원’이며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자로서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큰 자를 발견한 자는 그 상황이 매우 급박’할 때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얻도록 한 것이 ‘응급입원’이다. 
 그런데, 지난 19일 국회를 통과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에서는 경찰관이 행정입원 신청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경찰개입을 강화시켰다. 제44조 ②항에 ‘경찰관은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그 사람에 대한 진단과 보호의 신청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 경찰관이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게 한 것이다. ‘정신보건법’이라기보다 ‘경찰법’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폭력행위처벌법’조차 경찰개입의 강제규정 조항은 없다. 개정 법률안은 명칭도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변경되고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과 언론이 정신질환자의 개인 소행으로 사회문제를 호도함으로써 정신질환자에 대한 불안과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경찰국가를 연상시키는 정부대책에 대한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도, 정신보건법상에 ‘경찰개입’ 근거를 명문화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가 더 심각한 문제이다. 경찰이 현장에서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도 문제지만, 의료인이 아닌 경찰이 정신질환에 대한 의료적 판단을 하도록 한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개입 발상 자체가 정신질환자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 내지는 혐오대상으로 보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여성혐오’ 범죄를 또 다른 ‘혐오와 격리’로 덮으려는 꼼수는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적법을 가장한 국가의 ‘인권유린’과 ‘인권차별’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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