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광학교에서의 25년, 마치 ‘짧은 한 순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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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학교에서의 25년, 마치 ‘짧은 한 순간’ 같다”
  • 한고은 기자
  • 승인 2015.08.31 15:41
  • 수정 2015-08-31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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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혜광학교, 이기호 교사 등 정년퇴임식 가져
▲ 정년을 맞은 혜광학교 이기호 교사(왼쪽)

인천혜광학교(부평구 소재, 교장 명선목)에서는 31일 그동안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교사들의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많은 학생들과 동료교사들의 웃음과 눈물 속에 치러진 퇴임식 직후, 24년 11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혜광학교 학생들과 보내고 석별을 맞은 이기호 교사를 만났다.

이기호 교사는 덤덤한 얼굴로 “아직도 실감이 안 나지만, 어쨌든 큰 문제없이 퇴임식을 마친 것이 기쁘고, 학생들을 떠나게 되니 아쉬운 마음도 무척 크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기호 교사는 혜광학교 학생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한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다르다. 학교 밖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이기호 교사에게 시각장애인 후배이며, 동생이기 때문이다. 같은 핸디캡을 공유하는 이 사회의 동등한 일원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퇴임식에는 이기호 교사의 가르침을 기피(?)했다가도, 결국엔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으로 이기호 교사를 꼽는 학생의 사연이 소개돼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고, 부부의 연을 맺은 장성한 제자 한 쌍이 찾아와 이 교사의 손을 꼭 붙들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이기호 교사는 늘 학생들에게 건강한 ‘정신’을 강조해왔다. 91년, 처음 담임교사를 담당한 교실에 걸린 급훈은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무도관이냐’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이 교사에게 있어 건강하고 강인한 정신력은 자신을 있게 한 신념이나 다름없다.

“25년 동안 ‘건강’에 대해 가르쳐왔다. 질병이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가르쳤고, 학생들도 지압사나 안마사 등으로 사회에 진출하는데,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자신 먼저 건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체는 정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핸 하나의 수단이므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신을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교사는 강조한다.

이기호 교사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94년, 학생들과 지리산 천왕봉에 오를 때였다. 국립공원 직원들로부터 위험하다는 이유로 산행이 제지돼 붙잡혀 눈물을 머금고 내려와야 했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위험하고 어렵지만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올라가면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장애인들은 자신의 잣대로 위험한 행동이라고만 판단한다.”

무려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지난 3월 R놀이공원에서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 탑승을 막고 무력으로 끌어냈던 일과 한 치의 다름이 없는 이 일화는 비장애인들의 인식 변화가 더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걱정하는 것은 좋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막는 것과는 다르다. 비장애인들이 잘 구분해서 인식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기호 교사가 특수교육계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기자의 질문에 이 교사는 쓴웃음과 함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개선되어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 하지만 이 교사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가장 높은 시험 성적 등을 지닌 교사가 아닌, 높은 도덕성과 인성을 갖춰 사명감을 지닌 선생님들이 교단에 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시스템 마련이다.

25년 세월. 길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짧은 한 순간’ 같다는 이기호 교사. 이 교사의 앞으로의 꿈은 여전히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것이다. 결코 넓지 않은 시각장애계에서 언제든 다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으니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시각장애 학생들은 물론 교육을 받지 못한 또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능력을 다해, 사람들의 질병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의료교육을 앞으로도 해나갈 생각이다. 여전히, ‘정신일도하사불성’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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