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 모두가 행복한 장애인 교육, 학교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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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칼럼] 모두가 행복한 장애인 교육, 학교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 편집부
  • 승인 2023.08.21 11:13
  • 수정 2023-08-21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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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경_국제법률경영대학원 조교수

최근 한 유명 웹툰 작가가 자녀를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고발하고 이에 해당 교사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언론이 앞다퉈 전하는 사건의 편린과 그에 격렬히 반응하는 여론을 지켜보며 과연 이 문제가 학부모와 교사 간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으로 그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학부모나 교육을 맡은 특수교사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충들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아프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부모는 자녀의 존재 자체로 천형 같은 짐을 평생 안고 산다. 특수교사는 때때로 돌보는 장애아로부터 위협과 폭력을 당하면서도 아이를 대신해 사회적 편견에 맞선다. 어느 편에 서서 비난을 보태기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될까 한 번이라도 두려운 상상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우리 가족은 큰 아이가 초등 1학년에 들어갈 무렵 미국으로 건너가 6학년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다. 어린아이들은 외국어도 금방 배운다는 말만 믿고 한국어도 서툰 아이를 미국 학교에 입학시켰다. 1학년을 무사히 보내고 2학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아이를 한동안 지켜봤는데 말을 더듬는 것 같으니 언어치료를 받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네 살쯤이었던가 아이의 말이 눈에 띄게 늘어날 무렵 말을 더듬었던 적이 있었다. 치료를 받기에는 너무 어린 게 아닌가 싶고, 혹시나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위축되지나 않을까 싶어 검사와 치료를 미뤘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나도 잊고 있던 아이의 증상을 미국인 담임 교사가 먼저 발견하고 알려준 것이 고마웠던 한편, 혹시나 고치기 어려운 증세가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아이를 치료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을 진정하고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 제안을 따르겠다고.

며칠 뒤 선생님은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번에는 교육청에 보내야 할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와 함께 배달된 설문지는 수십 장에 달했다. 출산은 제때 했는지, 임신 중 약물을 복용한 적 있는지, 기저질환이 있는지부터 부모는 어떤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지, 영어는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가족의 규모는 얼마나 되고 몇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등등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언어 습득에 미치는 모든 요인들을 죄다 점검하는 듯했다. 대체 이게 언어 사용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은 질문도 다수 있었다. 사전을 찾아가며 밤을 꼴딱 새우고서야 답변지를 겨우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한 달 반 남짓 지났을까, 지역 교육청에서 한국인 통역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담임 교사와 언어치료 특수교사가 참여하는 회의를 소집하려 하니 참석 가능한 날짜를 알려 달라고 했다. 약속한 날 학교로 가니 담임과 특수교사는 물론 교감 선생님과 교육청 담당자, 통역사까지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교육청 담당자를 시작으로 담임과 언어치료사가 약 한 시간에 걸쳐 지난 한 달간 아이를 관찰한 결과를 차례로 보고했다. 교실은 물론 운동장과 식당 등 아이의 행동반경을 모두 따라다니며 선생님, 친구들과 나눈 대화의 수준과 양, 말더듬 증세를 세밀히 소개했다. 담임 선생님은 미국 아이들의 일반적 언어 사용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아이의 특이점을 설명했다. 예컨대, a나 the 같은 관사와 단수 복수를 구분해서 쓰지 못한다든가 하는 점이다. 언어치료사는 말더듬 증세에 집중해 언제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지를 알려주었다. 통역사는 따로 아이와 한국어로 면담했다며 ‘아이가 경상도 사투리를 가끔 쓰던데 부모 중 한 사람이 경상도 출신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관찰 보고가 모두 끝나고 나에게 궁금한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아이가 모국어를 처음 익힐 때도 몇 달간 말더듬 증세가 있었으며 관사나 단×복수 구분이 안 되는 건 한국어에 그런 게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언어치료 담당 교사는 모국어를 익힐 때 더듬는 증세가 제2외국어를 익힐 때도 똑같이 나타나는 게 마치 새로운 발견이라도 되는 양 놀라워했다. 나는 한 아이의 장애를 대하는 시스템과 이들의 태도가 그저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전문가들의 논의 결과, 일주일에 하루는 언어치료 선생님과 함께 수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기존 교실에서 수업을 받되 언어치료 선생님이 보조교사로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언어치료 교실로 가서 별도의 수업을 받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고 했다. 막상 처방을 받으니 둘 다 마뜩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아이가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점이 부각되어 상처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솔직한 마음을 전했더니 선생님들은 언어치료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편이 아이에게 훨씬 좋을 거라고 했다. 그 방에 가는 걸 다른 학생들이 부러워한다고도 했다. 설마 그러랴 싶었는데, 나중에 아이의 가방에서 사탕꾸러미가 나와서 물어보니 매주 언어치료 교실에 가면 선생님이 선물로 주시는데 다른 친구들은 못 가고 자기만 그 방에 가는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의기양양해 했다.

그렇게 2학년을 보내고 방학이 되었다. 급히 옆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전학을 하게 되었는데 개학하고 한 달쯤 지나 새 담임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전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던 특수교사가 ‘담당하던 학생이 수업에 안 들어온다’고 수소문했는데 이웃 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교육청을 통해 아이의 언어치료 기록 파일을 새 학교로 보냈다고 했다. 새 담임 선생님은 자신이 보기에는 언어치료가 전혀 필요 없는 아이인데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나에게 확인하러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그간의 과정을 설명드리니 새 학교에서는 다시 한 달에 걸쳐 아이의 언어 상태를 점검했고, 다른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나서야 더 이상 언어치료를 받지 않게 되었다.

나의 경험담을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의 장애교육 여건이 얼마나 후진적인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일깨우기 위함이다. 우리 아이의 말더듬 증세를 발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치료를 하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엄마인 나는 아무런 노력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별도의 시간이나 비용을 들인 적도 없다. 그 모든 것이 공립학교 시스템 안에서 진행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과 교육 수준을 가졌다는 우리나라가 과연 장애인 교육에는 얼마나 높은 열성과 수준을 보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사를 갈아 넣는 교육 환경, 교사와 학부모, 학생을 대결 구도로 만드는 학교 시스템으로 과연 교육 선진국이라 자랑할 수 있는가? 더 이상 교사 개인의 희생에 기댈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재정을 학교 현장으로 투입하자. 그래야 장애인 학생과 부모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학생과 학부모도 마음 놓고 학교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 장애인 교육은 모두를 불행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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