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동트는 바다, 동해 추암해변_문득 달려가도 미인의 발걸음 같은 능파가 반기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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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동트는 바다, 동해 추암해변_문득 달려가도 미인의 발걸음 같은 능파가 반기는 곳
  • 편집부
  • 승인 2023.06.09 15:00
  • 수정 2023-06-0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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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시퍼런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기암괴석에 와 제 몸을 부수는 그런 바다가. 그런 날 KTX에 몸(휠체어)을 싣고 동해로 떠난다. ‘애국가’의 뮤직비디오에서 시뻘건 아침놀을 배경으로 자태를 뽐낸 촛대바위가 있는 추암해변은 ‘어느날 문득 바다 여행’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10여 년 전 휠체어를 타고는 접근하기 힘들어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던 능파대도, 백사장이 아름다운 산책로도 이제는 정비가 잘 돼 접근성이 좋아졌다. 비록 촛대바위는 접근할 수 없지만 길어진 해거름에 느긋해지는 발걸음만큼이나 상쾌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동해 추암해변으로 가 보자.
전윤선_무장애여행 칼럼니스트

 

“동해물과 백두산이~”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옛날, TV방송 시간에 제한이 있을 때, 자정만 되면 울려퍼지는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으로 깔리는 절경, 촛대바위가 추암해변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촛대바위를 보기 위해 추암해변을 찾는다.

추암해변은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 남부에 있는 추암리 마을 앞, 길이 150m의 백사장을 가진 작은 해변이다. 뛰어난 경승지로 해금강이라 불려 왔으며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강원도 제찰사로 있으면서 그 경승에 취한 나머지 ‘능파대’라 부르기도 했었다. 능파(凌波)란 “‘파도 위를 걷는 것 같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능파대는 ‘파도를 능가하는 돌섬’이란 뜻으로 파도가 몰아쳐 바위를 때리는 광경이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추암해변이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준상과 유진이 추암해변 빨간 지붕 집에서 민박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부터 추암해변은 해돋이 명소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탔다.

 

 

어느날 문득 추암행 기차를 탔던 첫 기억

휠체어로는 해변에는 접근할 수조차 없었던 그때

 

내가 추암을 처음 찾았을 때 기억도 또렷하다. 10여 년 전 어느 날이었다. 출근길에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월차를 내고 무작정 추암으로 떠났다. 그때 추암해변은 작은 어촌이었고 추암역 뒤쪽으로는 논밭이었다. 인적 없는 추암역은 바다와 가까워 감성 돋는 작은 간이역이었다. 바다 여행지로는 최고의 장소였던 것이다.

▲ ‘애국가’의 뮤직비디오 첫 소설에 등장하는 촛대바위. 동트는 동해의 상징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작고 아담한 추암해변에 홀딱 반해 밤 기차를 타고 종종 가고 싶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기차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아 다시 가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추암역에 도착한들 온통 계단뿐이어서 휠체어 탄 여행객은 추암해변으로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추암 여행에 대한 열망은 대안을 찾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찾아낸 방법이 동해역에서 내려 추암해변까지 전동휠체어로 걷는 방법이었다. 어렵게 가는 동해 여행을 좀 더 알차게 하려고 꼼꼼한 계획과 코스를 만들었다. 3일과 8일 동해 북평 오일장에 맞춰 여행을 감행했다.

동해역에서 내려 휠체어를 타고 7킬로미터 남짓한 길을 가야 했지만 그럼에도 즐겁고 신나기만 했다. 추암해변을 다 둘러보고 5킬로미터 남짓 왔던 길을 되돌아 북평 오일장 소머리국밥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장터 곳곳을 둘러보곤 했다.

장이 끝나기 전 북평장 앞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묵호 까막바위까지 이동해 숙박을 했다. 물론 저상버스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대씩 운행해서 버스 시간을 잘 맞춰 움직여야 했다. 까막바위에는 장애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접근성을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지금이야 장애인콜택시도 금방금방 연결돼 이동에 걱정이 없지만 10여 년 전인 당시만 해도 장애인콜택시는 없는 데다가 저상버스만 드물게 운행됐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거리는 전동휠체어로 걸어 다녔다. 추암에 오면 ‘그때를 아십니까’의 추억이 소환된다.

 

다시 찾은 추암, 접근성 높아지다

우리나라 유일의 해상 출렁다리

▲ 추암 능파대는 추암해변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경이다.

추암해변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변 시설은 접근성을 높였다. 장애인화장실도 여러 곳에 있고 캠핑장도 있다. 삼척과 경계를 긋던 철조망을 걷어내고 그곳에 해파랑길을 만들어 삼척 이사부공원과 연결돼 경계 없이 오갈 수 있게 했다. 조각공원도 정비됐고 해안 산책로와 출렁다리도 새로 생겼다.

해안 산책로와 출렁다리는 인기 코스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바다 위에 지어진 출렁다리를 건너는 동안 심장은 쫄깃하고 해안 풍경에 빠져든다. 돌로 만들어진 숲, 능파대도 한눈에 볼 수 있어 눈이 호강한다. 아쉽게도 촛대바위는 볼 수 없다. 휠체어로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애국가 뮤직비디오로 대리만족할 수밖에.

출렁다리에서 보는 능파대 풍경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절경이다. 돌숲인 ‘능파대’는 촛대바위와 함께 추암의 상징이기도 하다.

▲ 심장이 쫄깃한 경험을 선사하는 추암 출렁다리. 72미터 길이의 해상출렁다리로 국내에선 유일하게 바다 위에 지어진 출렁다리다. 해안 절경을 한눈에 만날 수 있다.

능파대 옆에는 해암정이 있다. 해암정은 삼척 심 씨의 시조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제자를 가르치며 생활할 때 지은 정자로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처음 짓고,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광이 다시 지었다.

심동로는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였는데, 고려 말의 혼란한 상태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다가 권력을 잡고 있던 간신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왕은 그를 말렸으나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내리면서 결국 허락하였다.

동해 해암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집이다. 앞면을 제외한 3면은 모두 4척 정도의 높이까지 벽을 만들고 모두 개방하였다. 지난 1979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건물 내부에는 옛 명사들이 남긴 글귀가 많다고 하지만 휠체어 탄 여행객은 계단 때문에 접근할 수 없으니 글이 있는가 보다 한다.

▲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동해 해암정. 계단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추암에는 오리가족도 유명하다. 조각공원 연못에서 바다로 연결된 하천에는 오리가족이 산다. 오리들은 추암돌이와 추암순이로 불리며 추암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입구에는 추암돌이와 추암순이의 조형물이 서 있는데, 다리 왼쪽엔 밀짚모자를 쓰고 낚싯대를 든 추암돌이가, 오른쪽엔 노란 모자를 쓰고 생선을 들고 있는 추암순이다. 오리와 거위는 여행객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아기오리들은 엄마 추암순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자맥질을 배우고, 먹을 수 있는 풀과 위험으로부터 피하는 방법을 배운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엄마 오리 추암순이가 날개를 펴 아기오리들을 날개 속으로 품는다. 아기오리들을 품은 추암순이가 어찌나 대견한지 흐뭇해진다.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하천을 따라 먹이 활동을 한다. 그 풍경을 사진으로 저장하기 위해 여행객의 카메라는 바빠진다.

▲ 동해 추암해변의 유명한 오리가족을 형상화한 마스코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열린관광지로 탈바꿈

일상에 지친 어느날, 기차를 타고 동해로

 

추암의 접근성 변화는 장애인 등 관광 취약계층의 발길을 잇게 한다. 물리적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식당이나 카페를 찾는 휠체어 사용 여행객이 늘어났고, 이는 또 상인들의 서비스 접근성을 끌어올렸다. 돈 쓰는 만큼 대우받은 무장애 여행은 보편적인 여행으로 정착돼, 이제 무장애 여행객은 관광산업에서 고부가가치 고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장애인도 기차를 타고 느닷없이 떠나 바다를 만나도 좋을 동해 여행.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동해바다 추암해변으로 떠나 봄 직하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추암해변은 여행자의 빈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면 마음 둘 곳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바닥난 에너지가 마음 가득 채워져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초여름 해거름을 맞는 여행객의 걸음은 느긋하고, 그 걸음을 맞는 추암 바다는 경쾌하다.


[무장애 여행 정보]

*가는 길

KTX 동해역 하차

-강원도교통약자광역이동지원센터 즉시콜(☎ 1577-2014)

 

*접근 가능한 식당

추암해변 광장 식당과 카페는 모두 접근 가능

 

*접근 가능한 화장실

-추암해변 광장

-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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