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송암 박두성 역사공원 조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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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송암 박두성 역사공원 조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편집부
  • 승인 2023.06.08 10:30
  • 수정 2023-06-08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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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_인천송암점자도서관 관장

송암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세종대왕으로 여겨지고 있다. 세종대왕이 우리나라의 한글을 창제했듯, 송암 박두성 선생은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연구하여 반포했기 때문이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1888년 강화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의동 보통학교 훈도로 재직하고 계시던 중 1913년 제생원 현 ‘서울맹학교’로 발령을 받아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브라유식 6점 점자가 아닌 미국 뉴욕식 4점 점자를 사용하고 있어 많은 불편함이 있었다. 이에 그는 뉴욕식 점자를 우리나라에 들여와 맹인교육을 하고 있던 로제타 셔우드 홀에게 한글점자 세계 공용 브라유의 6점형 점자 전환을 제의하였으나 홀은 그 제의에 반대를 표시하였고, 이러한 회신을 받은 송암 박두성 교사는 제생원 학생과 일반 맹인들과 함께 브라유형 한글점자를 연구하여 1926년 11월 4일 이를 ‘훈맹정음’이란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송암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 교육과 복지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뿐만이 아닌, 대한민국 근대사에 큰 업적을 남긴 문화·역사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각장애인계는 이러한 송암 박두성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3년 송암 박두성 기념관 건립을 위한 시각장애인계의 의견을 모은 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인천지부를 중심으로 송암 전기 발간, 기념관 건립기금 마련 음악회 개최, 수산동 묘소 추모비 건립 등 지속적으로 그의 업적을 기려왔으며, 그 성과로 1999년 송암박두성기념관이 개관되어 현재까지 기념관 운영 및 박두성 선생의 유품 보존 관리 연구를 통해 유품 8종을 지난 2020년 국가등록문화재 800-1호로 등록하였다.

또한 2021년 11월 22일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가 복원되어 선생님의 역사적 의미와 숭고한 가치가 재조명되어 앞으로 박두성 선생님의 뜻을 이어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권익옹호와 복지증진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인천광역시와 강화군은 박두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계획 추진 중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선생의 묘소 이장 및 관리는 물론, 추진과정에서 시각장애인계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송암문화사업선양회의 의견만 듣고 역사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생을 시각장애인을 위해 헌신하신 송암 박두성 선생의 노력과 애맹정신이 훼손되면서까지 역사공원이 건립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송암 박두성 선생의 업적과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오로지 관광지로서의 공원 조성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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