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수학 교재’ 출간한 7명의 특수교사_“배움에는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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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수학 교재’ 출간한 7명의 특수교사_“배움에는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3.06.08 10:22
  • 수정 2023-06-09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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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 특수교사들의 모임인 ‘아이샘샘’ 소속 7명의 교사가 교육 현장에서 20여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모두 담아낸 교재가 출간됐다. “아는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더 넓고 깊게 세상을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하는 ‘찐’ 선생님들이 바로 여기 있다. 특수교육 학생들을 위한 『우리 아이 한 번에 떼는 한글』과 『우리 아이 한 번에 떼는 덧셈, 뺄셈』을 출간한 7명의 교사 이민경(인천동부초), 이정숙(인천성리초), 윤혜원·이순진(인천서창초), 김한나(인천선학초), 유정인(인천석정초), 최은순(인천도화초) 선생님을 만나보자.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위한 한글과 수학 책을 만든 ‘아이샘샘’ 소속 특수교사들. 일정 등으로 인터뷰는 다섯 분의 선생님만 함께 했다. (왼쪽부터) 이민경, 김한나, 윤혜원, 이정숙, 이순진 선생님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위한 한글과 수학 책을 만든 ‘아이샘샘’ 소속 특수교사들. 일정 등으로 인터뷰는 다섯 분의 선생님만 함께 했다. (왼쪽부터) 이민경, 김한나, 윤혜원, 이정숙, 이순진 선생님

‘ㅇ, ㅎ’부터 배우는 한글교재 

학생 특성을 고려한 학습 순서

현재도 특수교육 학생들을 위한 한글과 수학 교재는 있지만, 특수교육 학생들의 특성상 개개인의 학습 수준과 이해도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특수교사 대부분은 다양한 교재에서 각각의 학생들에게 맞는 자료를 취합해 자체 교재를 만들고 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매년 새로운 교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돼요. 새로 입학하는 친구들은 기존의 학생들과 특성도 학습 수준도 다르잖아요. 그리고 기존의 학생들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니, 그 수준에 맞게 또다시 맞춤형 교재를 만들어야 하고요. 사실 특수교사들에게는 이게 일상이에요.”

실제로 ‘아이샘샘’ 교사들이 만든 한글교재 『우리 아이 한 번에 떼는 한글(이하 우아한 한글)』의 1권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자음 순서인 ‘ㄱ, ㄴ’부터가 아닌 ‘모음과 ㅇ, ㅎ’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한글 순서의 ‘ㄱ’은 발음기관상으로 혀뿌리소리, 곧 연구개음이라고 불려요. 이 글자는 발음하기가 어려워요. 여러 가지 이유로 특수교육 학생들은 더 힘들어하고요. 학습이라는 게 조금씩이라도 발전해야 재미도 느끼는데, 첫 발음부터 어렵고 힘들다 보니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많이 힘들어 하더라구요. 또 한글을 배울 때 모음부터 배워야 하는데 모음으로만 글자가 이루어질 때는 소리는 없지만 첫소리를 채우는 ‘ㅇ’을 사용해요. 그래서 모음과 첫소리 ‘ㅇ’을 함께 배우고 ‘ㅇ’과 모양이 비슷한 ‘ㅎ’을 이어서 배우면서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정확하게 구별하도록 했어요.”

이 밖에도 『우아한 한글』은 교육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해 봤던 특수교사만이 알 수 있는 노하우가 가득 담겨 있다. ‘ㄱ’이 들어간 낱말을 몇 개나 가르쳐야 할지, 각각의 페이지에 몇 개의 단어가 들어가야 학생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범위에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을지는 물론, 글자를 쓸 수 있는 네모 칸의 규격까지 대충 넘어간 것이 없다.

“저희 교재 서체 역시 엄청나게 연구한 끝에 고른 거예요. 아이들이 눈으로 봤을 때 명확하게 글자의 라인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서체를 골랐어요. 현재 모든 교과서에는 명조체가 사용돼요. 그런데 실제 80% 이상의 아이들은 고딕체를 쓰거든요. 특수교육 대상자가 아닌 학생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이 부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익숙하고 헷갈리지 않는 서체가 어떤 것인지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적용한 거예요.”

▲『우아한 한글』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삽화를 삽입함으로써 한글을 학습하는 데 이해도를 높였다.

『우아한 한글』의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삽화’다. 이는 선생님들이 교재를 유료로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우아한 한글』의 삽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만화 <뽀롱뽀롱 뽀로로>, <안녕?! 자두야!!>, <꼬마버스 타요>, <띠띠뽀 띠띠뽀>, <마당을 나온 암탉> 등으로 유명한 삽화가 ‘최현명’ 씨가 함께했다.

“우리 아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글자만으로는 부족해요. 익숙하고 친숙한 그림과 함께 단어를 알려주는 것이 효과가 두 배 이상이거든요. 한 페이지에 대표되는 단어 한두 개만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18개 단어 모두를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거기다 이왕이면 아이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삽화를 넣어야겠다 싶었죠.”

 

직산, 수 감각 등 특수교육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수학 교재

사과 다섯 개가 테이블에 놓여 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사과가 몇 개 있어요?”라고 물으면 우리는 굳이 사과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지 않아도 다섯 개라는 것을 대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직산’이다. 아이샘샘 교사들 말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은 이 ‘직산’ 능력이 부족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렸을 때는 숫자를 셀 때 교재 등에 연필로 하나씩 그어가면서 숫자를 셌잖아요. 그렇게 학습을 하다가 어느 수준에 올라서면 그렇게 연필로 긋지 않아도 몇 개인지 알 수 있게 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게 힘든 거죠. 또 하나는 숫자 2는 알지만 2와 ‘두 개’를 연관 짓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래서 이러한 특성에 맞는 눈높이로 아이들에게 수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것을 중심으로 만들었어요.”

『우리 아이 한 번에 떼는 덧셈, 뺄셈(이하 우아한 덧셈, 뺄셈)』은 기존 글로만 배우던 수를 입체감 있게 감각적으로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고등수학까지 연계되는 기초 능력인 ‘직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교사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주사위’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직산’은 사진 찍듯이 이미지를 각인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우아한 덧셈, 뺄셈』은 교재뿐 아니라 주사위를 비롯해 다양한 교구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놀이식으로 직산 능력과 수 감각 능력을 키워준다.

“같은 숫자 4여도 주사위에 그려진 점의 위치를 서로 다르게 해서 모양이 바뀌더라도 그것이 숫자 ‘4’임을 훈련을 통해 인지하게 하는 거예요. 점이 나란히 찍혀 있어도 ‘4’이고 대각선으로 찍혀 있어도 ‘4’라는 걸 주사위 놀이를 통해 반복 훈련하는 거죠.”

이 밖에도 ‘9’ 이하의 덧셈 뺄셈을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기본적인 수 감각을 이해하고, 수 관계를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해 연산능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제작한 것.

아이샘샘 교사들은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배움의 길이 조금 더 재미있고 단축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특수교사들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당장 우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고, 무엇보다 ‘알게 됐다’는 성취감이 있어야 더 공부하고 싶은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이 교재를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특수교육 대상이 아닌 학생들보다는 천천히 가겠지만 최소한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요.”

 

“모든 학생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목표”

『우아한 한글』과 『우아한 덧셈, 뺄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년 동안 집필했으며, 남은 2년은 검증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퇴근 후 만나서 연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만나지 못할 때는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하면서도 7명의 선생님 중 그 누구도 힘들어하고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가르치고 있는 특수교육 학생들이 더 쉽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한글과 덧셈, 뺄셈을 배우길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사실 저희도 초임 때는 제 수업 방식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답답한 적도 있었죠. 왜 없었겠어요. 의욕은 불타오르는데 의지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니 아이들 탓도 했다가 제 탓도 했다가(웃음)…… 아마 모든 특수교육 선생님들이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그런데 저흰 아이들이 부족해서 날 못 따라온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방법이 아니라면 다른 교육 방법을 찾아보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 거죠. 이런 마음이 같은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서 책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아이샘샘 교사들은 누구나 실패를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만 ‘교수실패’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진정한 선생님이 되는 첫걸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못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 방법이 틀릴 수도 있다고 되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 교재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1순위지만 그만큼 특수교사들을 위해 만든 것도 있어요. 저희가 경험했던 실패와 그 변화의 과정, 그로 인해 얻은 노하우를 특수교사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거죠.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학기 초마다 개별화 교재를 만들고, 자료를 찾고 조합하던 그 힘든 과정을요. 이 교재를 통해 특수교사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실제로 두 교재에는 그동안 자신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활용한 PPT나 동영상 등 수업 보조 교재도 함께 들어 있다. 특수교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인 만큼 마지막 질문은 조금은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냐”는 거였다. 이에 아이샘샘 교사들은 “모든 학생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교사라면 누구나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가끔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이 ‘이상하지 않은 학생에게만’이란 조건을 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내 말을 잘 듣는’, ‘나의 학습 지도를 잘 따라오는’ 학생에게만 우리가 좋은 선생님이 되면 안 되잖아요. 모든 학생은 조건 없이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는 권리,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의 목표는 모든 학생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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