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달 특집] 출근하는 장애근로자들에게 ‘일’이란_“오늘도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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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달 특집] 출근하는 장애근로자들에게 ‘일’이란_“오늘도 출근합니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3.05.08 09:00
  • 수정 2023-05-04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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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부터 시작되는 직장생활은 65세라는 정년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전체 삶에서 아마도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리라 짐작된다. 학교를 졸업한 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능력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있어 한 번도 찾아오지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장애인 경제 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 중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은 2022년 5월 15일 기준 258만3530이며, 이 중 경제활동 참가율은 38.1%, 고용률은 36.4%다. 경제활동 참가율의 경우 전체 인구와의 격차는 26.8%P로 지난 2021년의 26.4%P보다 증가했다.
이중 장애가 심한 장애인(중증장애인) 경제활동 참가율, 고용률은 장애가 심하지 않은(경증장애인) 장애인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체장애 이외 신체 외부 장애인, 정신적 장애인, 신체 내부 장애인의 경제 활동상태가 상대적으로 열악하며, 발달장애인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은 33.3%, 고용률은 30.8%로 조사됐다.
장애인 10명 중 약 6~7명은 ‘일하는 삶’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그간 ‘장애인생활신문’에 근무하며 만났던 대다수 장애인과 가족의 가장 큰 걱정은 ‘자립’이었다. 자립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이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직업’은 시작점이자, 근본이다. 위 통계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장애인 10명 중 6명은 스스로 자립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근로자의 달 5월을 맞아 만나본 직업을 가진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럼에도 집에 있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오늘도 출근’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장애인 당사자에게 ‘일’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

“저에게 ‘일’은 능동적 삶을 살고 있음 방증하는 거예요”

시각장애공무원 이원상

인천시 미추홀구청 노인장애인복지과에 근무하는 이원상 주무관은 지난 2018년 30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공무원이 됐다.

“4전 5기였어요. 매번 이론은 합격해 놓고도 면접에서 4번이나 낙방했거든요. 사실 4번째 떨어졌을 때는 장애인 공무원직을 티오(TO)만 내놓고 뽑을 마음이 없는 거 아닌가 하는 불신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러던 찰나에 5번째 도전에서 합격한 거죠.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많이 속이 상했어요.(웃음)”

합격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입사 후 말 그대로 곤욕스러운 업무시간을 6개월이나 보내야 했다고 기억했다. 공직사회다 보니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은 대부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 불편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적었지만, 정작 문제는 업무 시스템이었다.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업무 프로그램의 경우 ‘장애인 접근성이’이 매우 낮아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이원상 주무관이 처음 발령받았던 2018년에는 ‘공무원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근로지원인 서비스’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하는 일 없이 8시간 내내 앉아 있는 건 곤욕이었어요. 근로지원인도 지자체가 별도의 조례로 예산을 세워야만 사용할 수 있었거든요. 저도 지인을 통해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가 근무하던 곳에 요청하면서 6개월 후부터는 지원을 받게 됐는데, 처음에는 저 하나 때문에 예산이 더 쓰이는 것에 대해 괜히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다행히 2021년부터는 법 자체가 공무원도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어요.”

현재 근무중인 미추홀구청 노인장애인복지과로 처음 발령받은 후 이원상 주무관이 했던 일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파트 특별공급에 관한 공지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관내 행정복지센터로 공문을 보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8시간 근무하는 내내 3건을 올리는 게 최고치였어요. 어느 날은 옆에 있는 직원분께 보통 1건 올리는데, 얼마나 걸리세요? 물어본 적이 있는데 ‘10분 정도요?’라는 대답에 좌절 아닌 좌절도 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물론 지금은 같은 공지를 올리는 것뿐 아니라, 장애인등록, 장애인등록증 교부, <장애인생활신문> 구독자 관리 등 8~9개의 업무를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또 한 번 멘붕을 겪고 있어요. 공직 프로그램이 음성지원이 되지 않아, 나름대로 ‘키보드 엔터를 몇 번 치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등 저만의 매뉴얼을 만들어서 업무를 진행했는데, 이번에 프로그램이 싹 개편됐어요. 저만의 매뉴얼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거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벌써 머리가 아파요. 사실 공기관은 법정 장애인의무고용을 지켜야 하는 곳이잖아요. 고용은 하면서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하지 않았다는 건 너무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요? 이 부분이 개선된다면, 더 다양한 유형의 중증장애인도 당당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은 항상 있죠.”

하지만 이원상 주무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반대한다며,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자립이라는 단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자립이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느냐, 생활을 유지하는 수동적 삶을 살아가겠느냐를 선택하는 거죠. 공무원이 되는 길이 절대 쉽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라는 거죠. 하나의 예를 들면 제가 5번째 면접을 보던 날 아내가 안경을 쓰고 면접장에 가라는 거에요. 사실 평소에 전 안경은 안 쓰거든요. ‘그래도 조금은 볼 수 있다’는 것을 피력해 보자는 아내의 아이디어였어요.(웃음) 물론 그것 때문에 합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역시 저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루고자 하는 의지, 그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이원상 주무관은 공무원직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매년 연말에 모집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체험해 보라는 고급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사실 저도 제가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도전하고 처음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은 행정복지센터에 1년 동안 근무하는 사업인데, 간접적으로 공무직 경험을 할 수 있고, 1년 동안 수입도 생기는 만큼 꼭 도전해 보길 권합니다.”

이원상 주무관 역시 마지막으로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퇴직 후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모든 직장인의 염원을 전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아내와 조그마한 안마원을 차려놓고 최소한의 필요한 돈만 벌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거기에 한 가지 더 개인적인 꿈을 더하자면, 인공 망막 기술이 하루빨리 개발돼 수술 후 운전을 해 보는 게 제 개인적인 꿈이에요. 그러면 은퇴 후 아내와 전국을 차로 여행하며 지내고 싶어요. 상상만 해도 행복하네요.”

 


“‘뿌듯함’이 일하면서 느껴본 가장 큰 감정이에요”

발달장애바리스타 고은비-장준호

지난해 12월 남동우체국 1층에 문을 연 ‘아이갓에브리띵 카페’에서 근무하는 고은비(사진 왼쪽), 장준호(사진 오른쪽) 바리스타를 만났다.

은비 씨는 이미 10년 차 베테랑 바리스타답게 고운 우유 거품을 내는 것이 어렵다는 카푸치노를 자신이 가장 잘 만드는 메뉴로 꼽았다. 20살 때부터 바리스타로 근무했다는 은비 씨는 여느 직장인들이 그랬듯 사회 초년생일 때 상처받았던 일, 그럼에도 보람됐던 시간에 대해서 들려줬다. “처음 바리스타로 일할 때는 아무래도 수업으로 배운 것과는 다른 변수들이 생기다 보니 당황하고 실수하기 일쑤였어요. 함께 일하던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났죠. 또 새로운 음료를 도전해 보고 싶어도 학교에서만큼 천천히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그 부분도 힘들었고요. 그때 울기도 했어요.”

은비 씨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순간 기자도 처음 사회생활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종일 긴장 속에서 근무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눈물이 터졌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은비 씨의 그 말이 더욱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은비 씨는 함께 일하는 자신보다 경력이 적은 동료들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여러 번 반복해서도 꼭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고 했다.

이에 반해 준호 씨는 이곳이 첫 직장인 신입사원이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가장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아직은 낯설고, 조심스러운 것들이 많지만 그만큼 직장생활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런 준호 씨에게 취직한 후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두말없이 ‘월급’ 아니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용돈도 주고, 자신의 옷도 샀다는 준호 씨는 월급 얘기를 하는 동안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제 입사 4개월 차임에도 “빨리 돈을 벌어 나중에 시골로 내려가 작은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노후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이 역시 이 세상 모든 직장인의 꿈 아니겠는가.

인터뷰를 진행하던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은 집에서 나오기가 정말 싫다는 넋두리를 이어가던 중, 은비 씨와 준호 씨는 “그럼에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회사를 나오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쉬는 날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만날 친구도 없고, 온종일 핸드폰을 하거나 TV 보는 게 다예요. 그래도 여기 오면 준호 씨뿐 아니라, 다른 바리스타들과 이야기도 하고 손님들이 제가 만든 음료에 맛있다고 칭찬도 해주고 좋은 일이 더 많잖아요.” 은비 씨의 답이다.

준호 씨 역시 “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손님들이 음료를 받고 맛있다며 ‘수고하세요’라고 말해주시고 가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월급’을 받고 나면 힘들었던 건 잊히고 ‘뿌듯함’이 남는 것 같아요. 집에만 있을 때는 ‘뿌듯함’은 못 느끼잖아요.”

인터뷰 끝에 손님이 들어와 두 사람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는 윤귀련 근로지원인이 함께 했다. “우리 카페에 있는 4명의 바리스타는 제각기 개성이 달라요. 은비 씨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직원들에게 먼저 말도 잘 걸고, 준호 씨는 상냥하고, 배려심이 많아요. 서비스직에 정말 잘 맞는 성향이죠. 또 임영진 바리스타는 정말 성실해요. 자기만의 체크리스트를 매일매일 만들어 확인하면서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하죠. 또 황수연 바리스타는 역시 과묵하게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어요. 이처럼 서로 다른 개성이지만 서로 장단점을 보완해주며, 완벽한 ‘원팀’이 되어가고 있어요,”

‘장애인 카페’, ‘장애인 근로자’가 아닌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서의 그들의 하루는 비장애인 직장의 하루와 다를 게 없었다.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이 시간에도 열심히 손님을 맞이하며, 음료를 제조할 그들을 응원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퇴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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