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지하 비극’ 주거취약 대책, 고작 ‘무이자 대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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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지하 비극’ 주거취약 대책, 고작 ‘무이자 대출’이라니
  • 편집부
  • 승인 2023.04.06 10:11
  • 수정 2023-04-06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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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폭우로 물에 잠긴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이 숨진 뒤,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시행 대책을 내놨다. 쪽방, 고시원, 반지하 등에 살고 있는 저소득 무주택 서민이 주거상향 이사를 원할 경우 정부가 최대 5천만 원까지 보증금을 무이자로 대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대상은 쪽방, 고시원, 지하층 등 비정상 거처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으로 부부합산 연 소득이 5천만 원 이하이고, 순자산 3억6100만 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여야 한다. 하지만, 올해 정부가 지원하려는 비정상 거처 이주지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은 5천 호에 불과하다. 주택도시기금이 소진되면 대출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 문제는 정부가 이들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전수조사도 없이 주먹구구식 땜질 대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다세대 주택 침수로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숨지자 국토부는 8월 16일 재해취약 주택과 거주자 실태조사와 함께 공공임대주택 입주권을 주거나 임대보증금 무이자 지원, 침수 방지시설 설치 등의 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재해취약 주택 해소대책’을 서둘러 내놨었다. 당시 발달장애인 가족 참변 현장을 둘러본 윤석열 대통령도 “노약자·장애인 등의 지하 주택을 비롯한 주거안전 문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름철 집중호우 발생이 코앞인 지금까지 하겠다던 ‘재해취약 주택과 거주자 실태조사’는 하지 않고 ‘비정상 거처 이주지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시행 대책을 덜컥 내놓은 것이다. 제대로 된 재해취약 주택 해소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뿐인가. 정부는 올해 초부터 쪽방, 지하층 등 비정상 거처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고 있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정부의 말대로, 주거 취약계층이 실제로 혜택을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말과는 달리, 반지하 수해참사로 주거 취약층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시급히 확대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됐는데도 지난해 12월 처리된 2023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관련 예산을 5조 원 이상 삭감하지 않았던가. 사실상 반지하 가구 이전을 위한 정부 주거대책의 핵심 예산이었음에도 정부는 주거 취약계층을 냉정하게 외면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권을 주겠다던 ‘재해취약 주택 해소대책’을 발표한 지 채 잉크가 마르기도 전 태도를 확 바꾼 것이다.

202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반지하 가구는 32만7320가구이다. 이 중 61.4%인 20만849가구가 서울에 있다고 한다. 정부와 서울시가 실태조사에 손 놓고 있는 사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 성동구가 수해 취약거처 이주·침수방지 지원을 위한 (반)지하 전수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전수조사를 하고 말고는 곧 정부나 단체장 의지에 달렸다는 얘기다. 인력 부족을 이유로 현장조사와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놓는 지원대책은 탁상공론일 뿐이다. 재해취약 주택이 몇 가구이며 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실태부터 파악한 뒤 합당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옳은 순서가 아니겠는가. 더욱이, 공공임대주택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예산마저 삭감하는 것은 정부가 할 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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