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돌에 구멍을 뚫는 물방울의 힘’을 제대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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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생활과학 톺아보기]‘돌에 구멍을 뚫는 물방울의 힘’을 제대로 쓰자
  • 이창선 기자
  • 승인 2023.03.23 11:21
  • 수정 2023-03-23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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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로 돌을 뚫을 수 있을까? 물방울이 매우 단단한 것을 뚫고 가는 예는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우리 머리 안에 있다. 뇌를 보호하기 위해 뇌세포들을 감싼 혈관들에는 ‘혈액-뇌 장벽(BBB: blood-brain barrier)’이란 매우 견고한 장벽이 있다. BBB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뇌 안의 환경이 안정적일 수 없다. 식사나 운동으로 혈중 호르몬이나 아미노산에 변화가 생기고, 전해질의 농도가 변할 때 뇌 안으로 물질들이 들어가 뇌세포 뉴런들이 갑자기 흥분할 수도 있다. 이처럼 뇌 기능 보호에 BBB라는 탄탄한 장벽은 필수이다. 한편, 생명 유지와 건강을 위해 견고한 BBB는 물과 공기같이 뇌세포에 필요한 것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고마운 문의 역할을 함께 한다.

뇌질환 치료를 위한 약물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이물질이 BBB를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BBB를 통과하는 약물 개발은 수많은 연구와 큰 자본을 투자해야 가능하다. 뇌질환 치료 약물을 개발하려면 BBB를 들어갈 약물전달체제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큰 과제로 꼽힌다. 다행히 그런 약물이 개발되어 왔다. 이토록 BBB는 몸 안에서 뇌를 이물질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는 가장 강력한 장벽으로 평가된다. 이물질을 바위처럼 막아선 BBB.

하지만 마취제 성분은 BBB를 통과할 수 있기에 수술실에서 마취를 할 수 있다. 또한 물과 공기가 들어가니 술(알코올)과 담배(니코틴)도 BBB를 통과해 뇌에 영향을 미친다. ‘술 방울’이 뇌를 지키는 견고한 보호장벽을 뚫는다.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과정에서 알코올 대사로 인한 산화 스트레스가 BBB 분해로 이어져 신경염증성 질환의 악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발표 등과 같이, 알코올이 BBB의 기능 이상도 유발한다는 연구들은 계속 제시돼 왔다.

흥미로운 논쟁이 있는데, 술을 가볍게 마시면 치매에 걸리는 위험을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ApoE4라는 유전자를 가졌다면 예외이다. 한편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위험은 술을 가볍게 마셔도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2년에 <Seminars in Neurology>라는 신경질환 분야 학술지에서 치매의 예방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해 치매 위험의 16가지 요인을 제시한 리뷰 논문(미국 뉴욕 Weill Cornell Medical Center 신경학과 소속 연구진 니오티스/Niotis 등의 발표)에 담긴 이야기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장기간의 다양한 연구들이 입증하였다. 한편, 치매 위험의 16가지 요인 중에서 1순위는 나이의 영향력이었고, 65세 이후부터는 5년마다 치매 위험이 두 배로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이런 과학 근거들은 나이가 들수록 치매 예방에 힘써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된 ApoE4 유전자는 신경조직의 재생을 돕는 아포지단백E(ApoE: Apolipoprotein E)를 만드는 유전자에 있는 대립유전자의 한 종류인데, 이 유전자로 인해 치매의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치매가 반드시 유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유전자의 영향 가능성이 있는 질환 대처에서 생활습관 관리를 통한 예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유전자가 질환을 유발시킬 경로를 스스로 차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유전자가 질병을 일으키려면 촉진하는 요소가 필요하기에, 촉진 요소를 차단하면 유전자는 질병을 유발하지 못한다는 원리이다.

BBB 이야기에서 알코올(술)과 치매, ApoE4 유전자 이야기로 넘어간 것은 서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주원인으로 BBB를 구성하는 혈관주위 세포의 기능 이상이 제시돼 왔다. 혈관주위 세포는 뇌혈류 조절과 장벽 유지 역할을 하며, BBB가 정상적으로 지켜짐에 필수인 세포이다. 건강하고 싶다면 이래저래 BBB를 흔들지 말고, 잘 지켜야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본래 뇌에 영양을 주려고 물과 공기를 BBB는 허용했지만, 이로 인해 물 같은 술, 공기 같은 담배연기 니코틴이 들어오면 BBB와 뇌를 해친다. 몸 안의 일들은 세상의 일들을 돌아보게 해 준다. 법의 장벽으로 선을 얻고 악을 막으려 했더니, 그 법의 속성을 남용하는 무리가 나타난다면 그 법은 BBB처럼 손상되고 사회는 아프게 된다. 이 말에 해당하는 사건, 사람들이 자주 보이고, 그런 이들이 진치고 있는 모습이 견고해 보인다면, 낙심 대신에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수적천석; 水滴穿石)’는 고사성어의 의미를 떠올려 보자. 그래서 ‘술 방울’ 대신에, 어렵더라도 ‘한 방울’, ‘한 방울’의 미약한 선한 영향력이 끊어지지 않게 자신을 관리해 봄이 어떨까? 그런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우리 사회 변화의 동력이며 희망일 것이다. 서양속담에서는 ‘물방울은 힘이 아닌 잦음으로 돌을 뚫는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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