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도망가면 어때요? 결국, 모든 게 잘되기 위한 과정이잖아요”_『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김해영 작가
상태바
“멈추고 도망가면 어때요? 결국, 모든 게 잘되기 위한 과정이잖아요”_『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김해영 작가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3.02.24 10:53
  • 수정 2023-08-22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11월 케냐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SNS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울린 휴대폰 화면에 뜬 ‘김해영 대표’의 이름은 반가우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냈다. “차 기자님 잘 지내셨죠?”라고 언제나 그랬듯 유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그녀는 과거 본지에 실은 자신의 기고문 일부를 새로 발간하는 책에 사용해도 되는지를 물어왔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그런데, 신간 나오세요? 그럼 우리 만나야죠.”라는 자연스러운 대화로 그녀와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134센터 미터의 작은 키, 척추장애를 딛고 세계를 누비는 국제사회복지사인 김해영 작가(직함은 여러 가지지만 신간 이야기를 위해 만났으니 이번엔 ‘작가’로 부르기로 했다.)는 2022년 12월 5일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를 발간했다. 그녀는 네 번째로 발간한 이번 책을 통해 ‘삶의 좌표를 잃은 이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기자의 마음을 움직인 부분을 중심으로 그녀와 책과 삶의 이야기를 나눠 봤다.

“우리는 대부분 행복하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더러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거기로 향한다.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다 있지만, 그래도 잘 알 수 없는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행복하기 위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고통과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48쪽, ‘케냐 나이로 열 살’ 중)

 

처음 케냐행 비행기에 올랐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장애가 있었지만 국제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직물 기능인으로 금메달을 수상했고 대내외적으로 인정을 받는 등 썩 나쁘지 않은 위치였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케냐로 떠났다.

“한국에 있으면 뭔가 주변 사람의 말과 상황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국제대회에서 수상하고, 제 위치에서 입지를 다져도 ‘장애’라는 타이틀이 저를 계속해서 옭아매는 것 같았어요. 그러한 시선을 피해 사실 도망치듯 아프리카로 간 거죠. 지금이 너무 좋으면 그런 선택을 안 했겠죠. 지금보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도망 자체가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잘 못 살아도, 실패해도, 잠깐 도망가도 모든 게 과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 사회는 현실 외면하는 태도로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다.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이 남한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과정이라고요.”

▲ 케냐 청소년 지도자 모임에서 특강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첫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김해영 작가)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착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74쪽, ‘행복과 단짝인 불행’ 중)

 

김해영 작가가 『도덕경』을 접한 건 2015년쯤이다. 아프리카에 오면서 모든 것을 내려놨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남아있음을 확인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기에 『도덕경』의 이 문구가 그녀를 다시 한번 일어서게 해주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한번 이해하고 나니 이보다 더 심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다’의 기준은 ‘짧다’잖아요. 짧은 게 없으면 긴 게 있을 수 없는 거죠. 같은 의미로 ‘산다’는 기준은 ‘죽음’이고, ‘행복’의 기준은 ‘불행’이며, ‘추함’과 ‘아름다움’의 무게가 동격인 거에요. 또 『장자』에는 하나의 예화가 나오는데, 생김이 흉한 사람과 왕이 매일매일 대화를 나누는데, 주변 사람들은 왕이 온몸이 뒤틀린 흉한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거예요. 이에 대해 왕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너무 귀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요. 추함을 버리면 아름다움도 사라지는 거예요.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취해도 그 안에 추함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거죠. 반대로 말하면, 함부로 아름다움만을 취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여기에 취하지 말고 좋은 부분을 찾아보는 거죠. 그럼 지금보다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 올해 2월 탄자니아 장애인직업전문학교 방문 당시 모습

 

“심리학적 이론에 기반해 이해해 보면 내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어른이 되고 지혜를 많이 가져도 내 안에 깊게 자리한 공포, 두려움, 불안, 상처,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87쪽, ‘구박받는 수박 한 조각’ 중)

 

김해영 작가는 유년시절 장애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만큼이나 가족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컸었다. 그녀는 아들을 원했던 집안에 장녀로 태어났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술에 취해 그녀를 방바닥에 내던졌고, 척추를 다친 그녀의 키는 134cm에서 멈췄다.

매일 술을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는 그녀에게 폭언과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을 심하게 앓다가 그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던 어머니는 힘든 삶에 대한 원망을 그녀에게 돌렸고, 그녀는 매일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폭언을 넘어서 흉기를 들이대며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어머니 밑에서 폭력과 폭언을 고스란히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녀는 어머니와 쇼핑하고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정말 작가님은 강철 멘털을 가지신 것 같아요. 저였다면 작가님처럼 어머님과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낼 수 없을 것 같은데…”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저 역시 모든 걸 털어내지 못했죠. 어떻게 그걸 다 잊어요. 근데, 제가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해야 해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과거의 사건은 당시의 메시지만을 던져줘요. 과거의 기억 때문에 지금의 제가 계속 아파하는 건 정말 억울한 일이잖아요.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부모님과 힘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예로 저희 어머니는 여전히 남아선호 사상을 강하게 가지고 계세요. 우리 집 세 딸이 엄청나게 잘해드려도 결국 아들이 최고이시죠. 또 언젠가는 어머니가 틀니를 하셔야 해서 치과를 예약해드렸는데, 의사가 여자라고 안 가시더라고요. ‘여자가 뭘 하겠냐’고 하시며(웃음)…. 이처럼 이 분은 안 바뀌어요. 싸워서 해결해야 할 이슈가 아닌 거죠. 이렇게 맞지 않은 생각과 언어에 대해 분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싸워야 할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 나가는 힘을 키우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현재가 아닌 것,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 상처받지 말자고요, 우리!”

▲지난 2월 잔지바르에서 활동하는 엔지오기관과 탄자니아 복지부 산하 정책국장(오른쪽)을 만나 장애인 개발 등을 진행하기 위한 면담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방문 이후, 밀알복지재단의 에너지나눔본부에서 태양광 랜턴을 현지의 수요에 맞게 기증하기로 하고 진행중이다. 이처럼 김해영 작가는 아프리카의 국제개발 사업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어느 날, 직업과 관련해 칼럼을 쓰던 중 『도덕경』 69장에 나온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고, 아하! 하고 깨우침이 일면서 내 마음에도 들어왔다. 69장은 전장에 나가는 병사를 다루는 방법과 전쟁에 임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적고 있다. 전쟁터에서 사용할 전술과 방법을 논한 후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애자승의(哀者勝矣), 상대방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이 전쟁에서 이긴다고.”(200쪽, ‘잘했어, 괜찮아, 이만하면’ 중)

 

‘애자승의(哀者勝矣)’는 앞서 언급한 김해영 작가가 신간에 담고 싶다고 기자에게 괜찮은지 물었던 그 글귀다. 김 작가는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에 궁극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메시지가 바로 ‘사랑’이라고 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을 10명이라고 가정한다면, 그중 1~2명은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중 4명은 무시했으며, 남은 4명은 적극적으로 상처를 줬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만 생각한다면 살아있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가 결국 누군가를 살리고 살아 있게 하는 힘은 항상 그러한 한두 사람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바로 상대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칫 가엽게 여긴다는 것이 동정이나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것과는 다르다며, 이 마음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녀 역시 자신이 상처를 이겨냈던 것도 바로 상대를 원망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여워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여러 번 언급되지만 제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품기도, 그렇다고 내치기도 힘든 존재예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날 낮에 남동생이 수박을 사왔는지, 어머니가 수박을 먹어 보라며 가지고 오시더라고요. 그런데 본인이 잘라온 수박을 바라보며 먹기도 전에 ‘맛이 없게 생겼네’ 하면서 한 입 베어 무시더니 ‘맛있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참 인생이 험하셨구나’였어요. 매 순간 불행할 거라 짐작을 하고 살아오신 거죠. 남편 없이 본인 자신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삶 속에서 장애가 있는 딸을 포함해 자식 넷을 건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어요. 희망을 품고 좌절하는 것보다 불행을 짐작하고 사는 게 어쩌면 그분 스스로는 덜 힘든 삶이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조금은 이해가 되고, 그 순간 그분에게 받았던 상처도 조금은 치유됨을 느꼈어요. 이 책을 읽게 되는 모든 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대를 위해서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덜 힘들기 위해 과거의 내가 아닌 오늘과 내일의 나를 위해 상처와 상처를 줬던 기억을 분리해 나가는 거죠.”

기자는 사실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은 ‘결국 이겨낸 사람, 성공했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여전히 한 번씩 휘몰아치는 감정에 힘들어 하고 그럴 때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끝에 이런 기자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전하자 김 작가는 호탕하게 웃으며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게 어쩌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기자님이 저를 다 이겨낸 성공한 사람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인생을 잘 살고 못 살고를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그 기준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거지, 내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매일매일을 비장하게 살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중요하지 않은 삶은 없으니까요.”

"힘들면 그만둬도 돼.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인생이 원래 그래”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지은이: 김해영

펴낸일: 2022년 12월 5일

 

척추장애, 부모의 방치, 엄마의 학대, 아버지의 죽음, 초졸, 가출, 식모살이, 공장 노동자 등 온갖 장애와 한계를 뛰어넘어 빛나는 보석이 되기까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묵묵히 적어 내려간 그녀의 책은 단순히 절망을 이겨낸 희망 스토리가 아닌, 현재도 이겨내려 노력하고 한발씩 나아가는 진행형을 담고 있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자격지심, 유년시절의 상처가 이따금씩 그녀를 괴롭히는 날이, 밤이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래 걸리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서려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말하는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라는 말이 가진 진정성과 무게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척추장애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그녀에게는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그녀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매일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내 삶의 주인으로서 꿈과 비전을 향해 발전하고 나아가는 것이었다.

황량한 벌판이라도 인간이 자리하면 그곳에서 삶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 모두 인생을 부여받고 죽지 않으려고 혹은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것만 생각해도 숨이 쉬어지지 않을까! 이것만 알아도 미움과 아픔이 덜어지지 않을까! 내 환경을 탓하고 남을 미워해 봤자 내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 인생에 집중하고 열심히 사는 것을 택하겠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녀의 담담한 인생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어쩌면 책을 덮는 그 순간 다시 일어설 용기의 씨앗이 마음속 깊이 뿌리를 돋고 있음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