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정보 기준과 제도개선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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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정보 기준과 제도개선 방향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3.01.19 11:18
  • 수정 2023.01.19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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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또는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정보는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형태로 제공되고 있어 발달장애인은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데 제한을 받고 있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 등과 함께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마련 토론회’를 1월 13일 국회의원회관 제1 세미나실에서 개최하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정보의 기준에 대해 논의하고 관련 제도개선 방향을 모색했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정보제공 외면은 ‘장애인차별’

 

“지원주택 공고 등 정보접근,

발달장애인이 내용 이해하고

스스로 신청하기란 불가능”

 

∎박경인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왜 우리나라는 발달장애인법에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만들라고 적혀 있음에도 7년 동안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특히 보건복지부 등 정부에서 장애인 관련 복지정책 자료들을 만드는 이유는 정부의 계획과 시행에 대해 잘 살펴보고 필요한 것들을 신청하라고 알려주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대상이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인(30세, 여) 활동가는 평생을 시설에서 살다 23살에 자립한 발달장애인이다. 자립할 때 그룹홈에서 자립정착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바리스타로 힘들게 번 돈과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의 담보대출을 받아 자립을 했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벅찬 이자와 월세를 내고 있던 중 최근 지원주택 공고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서를 쓰게 됐다.

먼저 지원주택 공고가 어디에 게재됐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확인해 알려줬다. 공고문을 살펴볼 때 익숙하지 않은 어려운 단어들로 쓰여 있고, 준비할 서류와 꼼꼼히 읽어야 할 내용도 많아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임대, 보증금, 소득자산, 자격심사 등 서류를 쓰면서 발달장애인인 박 활동가뿐만 아니라 지원해준 사회복지사도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SH공사의 지원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는 어려운 말과 내용으로 가득했다.

또한 박 활동가는 “은행에서 돈을 뽑을 때도 비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쓰는 다양한 단어들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려운 단어일 때가 많다.”며 “예금 출금, 계좌 송금, 조회업무 등의 단어들이 ‘돈 뽑기, 돈 보내기, 얼마 있는지 확인하기’ 등과 같은 쉬운 단어와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면 발달장애인 혼자서도 은행 일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은 다른 어떤 장애유형보다 정보와 권리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정부의 복지정책 정보와 수많은 자료가 있어도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거라면 있으나마나한 자료”라며 “발달장애인들이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정보를 통해 그들을 이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발달장애인도 국민으로서 자신이 이용할 복지와 정부 정책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알 권리를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 장벽을 허물어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라면서 “정부는 발달장애인법에 따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만들 근거와 시행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자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부터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0조(의사소통 지원)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해 배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제20조(정보접근에서의 차별금지), 제21조(정보통신. 의사소통 등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제23조(정보접근. 의사소통에서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등의 개별조항을 통해 좀더 분명하게 정보 접근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해외, 발달장애인 정보제공지침 활용 중

한국, ‘발달장애인 대상 정보제공 지침’

이미 개발···“제도개선, 정부 의지 문제”

 

∎이수연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유니버설디자인(보편적 설계) 원리를 적용해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를 개발하거나 기존의 자료를 수정한다. 이와같이 해외의 경우 학습장애가 있거나 문해력이 낮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정보제공 지침을 만들고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장애인교육법」 등을 근거로 보완 대체 의사소통 기기를 보급하며, 「보조공학법」에 근거해 보조공학센터, 정보제공센터에서 발달장애인에게 기기나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비영리민간단체인 남부아동·가정연구소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문해력이 낮은 아동이나 그 가족들이 보건 관련 문서를 읽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보건 문해 스타일 매뉴얼(The Health Literacy Style Manual)’을 개발하기도 했다.

영국은 「평등법(Equality Act 2010)」에서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특성, 문해력 등을 고려해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문서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장애인 권리장전의 일부로 ‘쉬운 읽기 지침–쉬운 단어와 그림 사용법’을 발간해 장애인과 소통하는 방법과 관련된 자료 제작,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영국 보건부는 민간기관인 멘캡(Mencap)과 함께 ‘이해하기 쉬운 정보 제작이나 위탁을 위한 지침’(2010), ‘접근 가능한 쓰기를 위한 지침’을 개발하는 한편, 법무부와도 공동으로 사법행정기관 종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안내 책자를 발간했다.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와 장애인개발원은 2015년 ‘발달장애인 정책정보 접근성 제고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 발달장애인이 정책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읽기 쉬운 정책정보의 제작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복지부는 지적장애복지협회와 함께 국제장애인조직인 국가평등파트너십과 체인지(CHANGE)가 제작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서 만들기』를 번역해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서 만들기』 안내서를 발간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국립장애인도서관은 『발달장애인용 읽기 쉬운 책 개발 지침』을 만들어 글자 크기와 글꼴, 여백, 텍스트의 배치, 강조 등에 관해 안내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이와 같이 정부와 민간에서 연구를 진행해왔고 그에 따라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정보를 제공하는 지침들이 이미 나와 있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정보지침 마련 등 제도개선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공공영역 각종 절차들과

통신사업 등 피해 발생

소비 분야에 우선 제공돼야”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에게 정보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는 일상에서의 직접 피해를 입게 되거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달장애인을 수동적이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는 매우 다양한 유형과 정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를 어느 정도의 인지 정도를 고민하면서 만들어낼지는 매우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다. 우선 기본적으로 △쉬운 단어로 바꾸기 △그림을 함께 표시하기 △짧은 문장으로 구성하기 등의 기본적인 원칙이라도 지켜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사적인 영역까지 확대하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본적인 공공영역의 각종 절차들과 통신사업과 같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는 소비 분야에서는 우선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가 빠르게 검토되고 제작, 제공돼야 한다.

김 국장은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를 만들어내는 것은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편의시설이 이동이나 시설 접근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리한 시설물이 돼주듯, 발달장애인을 고려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는 결국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의 일상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중요한 편의 제공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 장애인

소송 당사자에 의무 제공 추진

최혜영 의원, 형사-민사소송법

개정안 대표발의

 

∎최혜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애인이 소송 당사자일 경우 판결문 제공 시 법원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작성,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및 ‘민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1월 13일 대표 발의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선택의정서 비준 동의안이 지난 12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1월 14일부터 국내에서 효력이 발생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의 사법 접근권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미 우리나라 현행법은 장애인 사법 지원의 일환으로 점자 문서 및 수어 통역 등을 제공하고 있으나 소송 당사자인 장애인이 어려운 법률용어 등으로 인해 판결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최 의원은 “장애유형에 따라 일부 장애인의 경우 본인이 소송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판결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소송 과정으로부터 소외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통해 장애인의 사법 접근성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달 청각장애인 원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지 리드(Easy-Read, 단문 위주 문장 및 그림 등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문서 등을 제작하는 방식) 형식의 판결문을 제공한 서울행정법원의 판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고인 청각장애인 A 씨는 서울 강동구청장을 상대로 “수어 통역이 필요한 자신이 다른 장애인과 동일한 면접 시간을 배분받은 것은 차별”이라며 장애인 일자리사업 불합격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강우찬)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라는 식으로 일반 판결문과 옆에 쉽게 설명한 문장을 괄호 안에 따로 표기했다. 여기에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문뿐만 아니라, ‘같은 높이의 받침대에서 키가 작은 사람만 경기를 보지 못하는’ 그림과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맞춤형 받침대에서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그림이 제시됐다. 동등한 기회만을 제공하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동질성을 보장하는 ‘결과의 공정’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삽화를 집어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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