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황제의 꿈이 가배의 향처럼 배어 있는 덕수궁 석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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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황제의 꿈이 가배의 향처럼 배어 있는 덕수궁 석조전
  • 편집부
  • 승인 2022.12.02 17:51
  • 수정 2023-03-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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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여행에 대한 욕구가 봇물 터지듯 터지고 있다. 장애인생활신문은 이에 부응해 휠체어를 타고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무장애 여행 칼럼니스트 전윤선(sun67mm@hanmail.net)의 ‘휠체어 타고 방방곡곡’을 2022년 말까지 매달 1회 연재해 왔는데 이번이 마지막 회다. 장애인이 느닷없이 떠나도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국내 여행지와 무장애 여행정보를 전윤선의 글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평등하고 보편적인 무장애 여행이 특별한 것이 되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리며. _편집자 주

[연재순서]

∎7월 서천 판교
∎8월 포천 산정호수
∎9월 안동 하회마을
∎10월 제주 치유의 숲
∎11월 곡성 기차마을
∎12월 덕수궁 석조전

전윤선_무장애 여행 칼럼니스트

태양의 시간이 맥을 못 추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계절은 줄다리기를 한다. 목련의 시계추는 잠시 고장 난 듯 봉우리가 봉긋 솟아 곧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창을 닫기엔 아직 햇살이 뜨겁고 열어 두기엔 바람이 차갑다. 사람들은 빌딩 안 카페에서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을 만끽한다. 거리에 가로수는 계절의 무게 다 덜어 내고 다시 채우려 잠시 휴식한다. 이 틈을 타 한가롭고 여유로워지는 도심 한복판 궁궐로 숨어 버리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다.

 

한국 근대사 한눈에 볼 수 있는 궁궐

휠체어 타고 둘러보는 황궁의 정전

 

궁궐 여행도 다양해지고 행사도 많아졌다. 달빛 기행, 야간 개장, 음악회까지 궁궐 여행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있다. 4대 궁궐 중 덕수궁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덕수궁 전각의 접근성과 덕수궁을 둘러싼 주변이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석조전, 중명전, 덕수궁 돌담길 완전 개방까지. 백 년 전 황제의 꿈을 따라가는 도심 여행은 흥미진진하다.

덕수궁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까지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새롭게 단장을 마친 곳도 있고, 아직 단장 중에 있는 곳도 있어 장애인 등 관광약자도 궁궐 여행이 한결 가벼워지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 등의 궁궐에는 휠체어 사용자도 궐 전각에 접근할 수 있어 늘 부러웠다. 이젠 우리 궁궐도 빠르게 접근성이 개선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 석조전 전경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돼 무단통치 시대인 1910년 준공되었다. 석조전을 설계한 사람은 영국인 건축가 하딩(J. R. Harding)으로 알려져 있다. 기단 위에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우고 중앙에 삼각형의 박공지붕을 얹은 신고전주의(19세기) 양식의 건축물이다.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로 고종 황제에 의해 황제국이 선포된 후 황궁의 정전으로 만들어졌다. 석조전은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는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 서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이다.

황궁으로 사용하던 석조전은 1930년대 일제가 미술관으로 개조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해방 후에도 다른 용도로 사용해 오다가 대한제국 역사적 의미를 되찾고자 2014년 10월부터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자주 근대국가를 염원했던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을 복원하고 그 공간은 대한제국의 생활사와 근대의 정치, 외교, 의례, 황실사를 담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재 복원 과정은 꽤나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준공 당시의 사진 자료를 토대로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하고 국립고궁박물관과 창덕궁에서 보관하고 있던 당시 가구들을 원래 자리에 배치해서 황궁의 생활사를 재현했다. 석조전은 2층 건물로 1층은 황제가 일하던 사무공간으로 중앙홀과 귀빈 대기실, 대식당이 있다. 2층은 황실의 사적 공간으로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거실, 서재, 화장실, 욕실 등이 있다. 지층은 고종의 근대적 개혁과 석조전 복원기를 전시한 공간이다.

▲ 석조전 승강기.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고심 끝에 설치됐다.

문화재에 승강기를 설치하는 것은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때로는 훼손을 막기 위해 경직된 보호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무장애 관광과 가장 많이 충돌하는 곳이 문화재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문화재 훼손 없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마침 석조전 앞에서 승강기 설치에 참여한 건축 디자이너와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다.

2층 건물 석조전에 승강기가 생겨서 이젠 휠체어 사용자도 석조전 관람이 가능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내부에 진입해도 모든 공간에 접근할 수 있게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백 년 전 고종황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은 마구 방망이질을 해댄다.

 

장식도 가구도 모두 문화재인 중앙홀

접견실엔 곳곳에 오얏꽃이 수놓아져

 

먼저 2층에 있는 대한제국 정전인 중앙홀로 갔다. 중앙홀은 석조전의 중앙 계단을 올라와야 실내로 들어갈 수 있지만 휠체어 탄 관람객은 새로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중앙홀은 로비와 같은 공간이어서 크기와 내부 장식이 황금색으로 빛나 그 위엄에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 정도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아칸서스잎 몰딩과 과일 띠 주름장식 기둥 등 고전적인 장식을 활용했다. 1911년과 1918년 사진을 검토해서 준공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 그렇다 보니 내부에 장식과 가구도 모두 문화재다. 특히 중앙홀 탁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보관하던 것을 가져와 석조전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가구다. 중앙홀엔 거울도 있다. 백 년 전 거울은 귀한 물건이어서 중앙홀 벽난로 위에 달아 거울에 비친 창을 인테리어로 보이게끔 활용했다. 거울에 비친 창은 화려하면서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게 거울 위치를 벽난로 위에 자리 잡게 했다.

▲ 중앙홀 탁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보관하던 것을 가져와 석조전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가구다. 당연히 문화재다.

중앙홀 오른쪽은 귀빈 대기실이고 왼쪽은 대식당이다. 귀빈실로 이동해 대한제국 시대 고종 황제를 만나는 시간여행을 떠났다. 귀빈실은 황제를 폐현하기 전 순서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왕을 만날 때는 알현이고 황제를 만날 때는 폐현이다. 귀빈 대기실은 황제를 만나기 전 대기하며 관리들과 간단하게 대화를 하거나 황실에서 제공하는 비스킷이나 샴페인, 커피 등의 서양식 다과로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다고 한다. 서양 음식은 명성황후 때 경복궁에서부터 시작돼 대한제국 시대엔 메뉴가 고급화되고 다양해졌다. 귀빈실은 1918년 사진 속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참고해서 좌우대칭으로 배치했다.

접견실로 발길을 옮겼다. 접견실은 황제를 폐현하는 곳으로 석조전 실내 공간 중 가장 화려하고 위엄 있는 곳이다. 다른 곳과 달리 황실의 문장인 이화 문양의 오얏꽃 무늬가 가구와 인테리어에 새겨져 있다. 오얏꽃은 매화꽃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토종 자두꽃이다. 조선이 오얏꽃을 왕실의 나무로 삼은 적은 없지만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오얏꽃이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됐다. 오얏나무 열매인 자두는 귀한 과일이어서 오죽하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석조전 여러 공간 중 가장 화려하고 위엄 있게 꾸며진 접견실. 접견실 곳곳에는 오얏꽃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다.

요소요소에 경사로 설치, 접근성 높여

침실, 비운의 왕세자 영친왕 내외 사용

 

황실의 사적 공간은 황제의 침실과 서재, 황후의 개인 공간이 함께 있는 곳이다. 황제의 침실로 들어가는 곳도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접근성은 괜찮다. 고종의 침실은 황금색 침구와 장식이 황제의 위엄을 나타낸다. 백 년 전 고종은 스스로 황제국을 선포해 즉위했고 중국 황실에서만 사용하던 황금색을 석조전 곳곳에 사용했다. 침실은 화려한 유럽풍의 가구들이 배치돼 있다. 석조전 계획 당시에는 고종의 침실로 계획됐었으나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 계속 머물며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침실을 사용한 왕은 유학을 빌미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영친왕이었다. 그는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훙거 때 귀국해 석조전을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그 후로도 영친왕은 귀국할 때마다 석조전을 숙소로 사용했다.

▲ 황제의 침실. 황제의 나라를 선포하고 첫 황제가 된 고종은 아쉽지만 이 침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비운의 왕세자 영친왕이 가끔 귀국할 때 임시거처로 사용했다.

황후의 방으로 건너가는 곳도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휠체어로 이동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황제와 황후의 방 사이에는 서재와 화장실, 샤워실까지 있고 백 년 전 변기와 욕조가 지금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옆 욕조도 지금의 것과 똑같다.

▲  석조전 화장실의 변기. 지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황후의 공간도 거실과 침실로 나눠진다. 거실은 황후가 책을 보거나 내빈을 접대하는 공간이어서 중앙에는 타원형 탁자와 책장이 있다. 침실은 준공 당시 순헌황귀비의 침실로 계획되었으나 준공 직후 황귀비가 별세하여 사용하지 못했다. 이후 영친왕과 왕비가 입국할 때 잠시 사용했다. 침실과 거실은 자주색 침구와 커튼, 소파, 방석 등 황후의 기품이 느껴지며 화장대까지 고증을 거쳐 전시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침구와 커튼에 새겨진 오얏꽃 문양이다.

고종황제는 가배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가배의 쓴맛이 자신의 처지와 닮았고 가배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먼지처럼 가벼워 허공으로 흩어진다고 했다. 당시 나라 잃은 고종의 처지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을지 석조전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다. 덕수궁은 조선시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까지 가슴 아픈 시간이 박제돼 있는 곳이다.

무장애 여행 정보

석조전 관람은 덕수궁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가능하다.

http://www.deoksugung.go.kr/c/schedule/info/SB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2호선 서울시청역에서 접근할 수 있다.

 

접근 가능한 식당

-정동길 덕수정(02-755-0180)_특히 부대찌개와 오징어볶음이 별미다. 맛집이라 대기를 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 그 외 정동빌딩 내 다수

 

접근 가능한 화장실

덕수궁 중화전 앞

 

무장애 여행 문의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sun67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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