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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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칼럼] 아는 만큼 보인다
  • 편집부
  • 승인 2022.11.17 09:27
  • 수정 2022-11-17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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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숙_미추홀학산문화원 시민문화팀 대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미추홀학산문화원(이하 문화원)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공동창작하는 시민창작예술활동-마당예술동아리를 지원하고 있다. 매년 10여 개의 동아리가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연습해 가을에 열리는 시민창작예술축제 학산마당극놀래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기량을 뽐낸다. 마당예술동아리가 만든 공연은 관객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큰 호응을 얻는다. 유명배우가 나와서도 아니고, 무대 세트가 휘황찬란해서도 아니다. 우리 동네의 모습이 보여서, 내 가족의 이야기 같아서 웃음도 눈물도 쏙 빠지게 공감하며 극을 관람한다.

시각장애인 마당예술동아리 마냥은 지난 2017년 문화원과 인천시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의 협약을 통해 결성되어 동아리원들의 경험담과 장애에 대한 인식, 생각들을 유쾌하게 담아낸 5편의 연극과 1편의 영상작품으로 관객을 만났다.

필자는 결성 당시부터 현재까지 해당 동아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매개자로서 함께 하고 있다. 동아리원들과 둘러앉아 수다를 떨다 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지하철에서 밑도 끝도 없이 욕설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학창 시절 조카를 안아보려 하자 ‘뵈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 만지고 다닌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져’라는 숙모의 모진 말도 들었다.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뿐만 아니다. 비장애인들에겐 당연하고 쉬운 일상이 이들에게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노하우를 터득해 서로 공유할 만큼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컵라면 표시선에 맞춰 물을 붓는 일,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알맞게 두르는 일, 모처럼 외식 자리에서 가지런히 놓은 16첩 반상의 재료와 위치를 파악하는 일. 너무 당연해서 불편함을 상상조차 안 해 본 일들이 눈을 감는 순간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일이구나 생각해 본다.

최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표기가 도입된 컵라면 용기가 출시됐다는 뉴스를 읽었다. 몇 해 전 컵라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저 용기가 왜 만들어졌는지 관심도, 혹은 알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확산 되던 시기, 방역을 위한 항균 필름 부착이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인식을 방해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그 뉴스는 내게 여러 번 본 재방송 같았다. 동아리원들에게 이미 여러 번 들었던 불편함이었다. 이 또한 마냥이 아니었다면 듣고 지나쳤을 뉴스였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용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표현에 무한한 공감을 보낸다. 역사도 그렇고 장애도 그렇다. 모르던 때는 그저 ‘그렇구나’로 넘겼던 것들에 의미가 생기고 깊이 있는 공감을 하며 주변을 더 돌아보게 된다.

나는 6년 전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인식개선이 단번에 이루어질 순 없겠지만, 변화는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장애에 대해 알게 되는 만큼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그 관심이 변화의 씨앗이 되리라 믿는다. 마냥과 함께한 창작의 시간들이 보이는 것에 매몰되어 있던 내 시야를 점차 밝혀 주었듯 마냥의 작품을 본 관객들의 시야도 넓고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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