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분리 권하는 사회
상태바
[현장칼럼] 분리 권하는 사회
  • 편집부
  • 승인 2022.09.02 10:43
  • 수정 2022-09-02 10:43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승미_장애통합 어린이집 희수자연학교 원장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나에겐 드라마보다 책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30면에 달하는 종이신문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에 비해 정보가 크게 뒤처지지도 않는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도 최근 드라마 중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이 있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다는 자폐인 변호사 이야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장애 비장애 통합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나에게는 특별한 드라마다.

유치원 초임교사 시절 담임했던 자폐를 가진 아이 김명석(가명)은 지금 2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몇천 더하기 몇천에 대답을 척척하고 모든 글자를 막힘없이 줄줄 읽어 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닌 ‘화장실 다녀와, 화장실 다녀와’라며 성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반향어도 우영우와 비슷했다.

학기 초 어느 날 그림 그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 색칠을 돕다가 어느 순간 교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자 섬뜩한 마음이 들어 김명석을 찾았는데 아이 자리가 비어 있었다. 황급히 원장님께 보고하고 어머님께도 전화드리고 밖으로 찾으러 달려 나갔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서로 연락이 되지 않은 상태로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미친 듯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헤맸다. 아이는 근처에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경찰로 연락하려고 유치원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는 집으로 갔다고 어머님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에게 유치원은 편한 공간이 아니었나 보다. 기억을 더듬어 편안한 집으로 찾아갔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 나는 20대 초반의 어린 교사인 나는 사직서를 매일 가슴에 품고 다녔고, 그런 내 속마음을 아셨는지 명석이 어머님은 손을 꼭 잡고 울면서 명석이 담임 끝까지 해 달라고 자주 우셨다. 나는 엄마에게 걱정 마시라며 안심을 시켜가며 1년을 버텼다. 명석이는 그렇게 어린 교사인 나를 장애통합을 포기하면 안 된다며 무언으로 가르쳐주었다.

그 어린 교사였던 나는 이제 장애통합 어린이집 원장이 된 지 20년이 넘었다. 생각보다 유아들은 장애 비장애를 크게 구별하지 않는다. 이제는 성인이 된 배민지(가명) 여자 친구는 장애를 가진 문유민(가명) 남자 친구와 일곱 살에 한 반이었는데 커서 문유민과 꼭 결혼하겠다고 했었다. 문유민네는 경사가 났고, 배민지 부모님도 엄마 미소로 딸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우영우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손가락으로 세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준호처럼 문유민이 ‘공’이 발음되지 않아 ‘고’라고만 하다가 어느 날 ‘공’이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던 순간 교사들보다 더 기뻐한 것은 배민지였다.

장애, 비장애가 통합된 환경은 우영우 드라마의 인기나 공익광고에 손잡고 함께 들어오는 달리기 장면처럼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장애통합 어린이집이 많지만 우리 어린이집으로 오는 아이들은 중증이거나 다른 곳에서 감당하기 힘들어 오는 경우가 많다. 일곱 살에 언어도 전혀 안 되고, 기저귀를 찬 아이의 부모는 중증이라 특수학교와 장애 전문 어린이집에서 지금껏 충분히 잘 돌봄 받고 있는데도 굳이 입학상담을 하러 오셨다. 나이가 더 차면 또래들 사이에서 놀 수 있는 기회는 평생 없을 것 같다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옆에서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또 어떤 부모님은 던지고 소리 지르고 통제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 때문에 여러 곳에서 거절당하시고 이곳마저 안 받아주면 이 사회에 우리 아이와 더 이상 아이와 설 곳은 없다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오시기도 하셨다. 근육병으로 잡아주지 않으면 혼자 걷기 힘든 데도 매일 산책을 나가는 이곳에 보내겠다는 부모님도 계셨다.

통합 어린이집은 일반 어린이집보다 훨씬 더 바람 잘 날 없다. 장애아동이 비장애아동에게 큰 상처를 내서 치료하면서 화가 난 부모님께서는 속상한 마음에 ‘이게 제대로 된 통합이냐’는 원망하셨고, 나는 앞으로 날 흉터에 대해 평생 사비로라도 치료해 주겠다고 각서를 써 드리겠다 약속해 드렸다. 이 일은 상처 낸 장애아동 부모가 알게 되면 마음에 상처가 될까 봐 혼자 삭혀야 했다. 너무 많이 우는 장애친구 때문에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하는 비장애아이들, 멋지게 쌓기 놀이하는데 이유 없이 망가뜨리는 장애친구를 화가 나서 때리는 아이들, 장애친구들 너무 배려를 잘 해주다가 어느 날은 짜증이 폭발하던 아이들, 원장님은 장애아동만 너무 배려한다며 섭섭해 하시면서도 묵묵히 장애아이들을 수용해 주시는 비장애아동 부모님들, 장애아동 담임하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맞거나 물리기도 하고, 불쑥불쑥 도로로 뛰쳐나가는 아이 손을 꼭 잡느라 손목 인대가 늘어나기도 하고, 걷지 않으려 하는 아이를 안고 업느라 무릎에 항상 보호대를 차고 있고, 졸업을 시키고도 초등학교에서 문제행동으로 학교를 떠들썩하게 하는 아이를 퇴근 후에 다시 만나서 마음을 읽어 주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기에 아이의 작은 상처에도 걱정이 생겨서 CCTV 확인을 요청하셔서 신뢰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내색 않고 다음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부모님들 맞이하는 교사들. 모든 상황에서 나는 운영자로 장애아동 편에 서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세상은 장애에 그렇게 따뜻하지 않아 시소는 항상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에 나는 그 반대편에 서 있어야 시소는 수평을 겨우 유지하게 되니까 말이다.

장애 비장애가 함께 산다는 것은 엄청난 ‘노오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20년 통합을 했으면서도 요즘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런다고 나는 쉽게 통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20대 어린 교사가 결국 사표를 꺼내지 않은 것처럼 나는 그렇게 버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혼자가 더 이상 아니다. 장애를 가졌다고 무조건 관리하기 편하게 한 곳에 모아 두자는 분리 권하는 우리 사회의 높은 벽을, 장애통합을 선택한 장애가족뿐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진짜 사회를 만들어 준 비장애가족들, 그리고 최전방에서 그 일을 묵묵히 해낸 우리 교사들 모두가 분리를 권하는 사회에서 통합을 외치면서 손에 손을 잡고 담쟁이처럼 그 벽을 다 함께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함께하는 삶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 줄 이 장애통합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이뤄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추추츄 2022-09-05 01:30:35
분리를 권하는 사회에서 분리와 통합 사이에 큰 강을 건널 수있는 다리로 버텨주니 장애부모의 한사람으로서 너무 감사합니다ㆍ희수는 사랑입니다

곽진주 2022-09-04 20:29:23
원장님 멋져요

하정완 2022-09-03 13:29:47
근사합니다. 멋있습니다. 축복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