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이 ‘나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교육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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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들이 ‘나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교육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 편집부
  • 승인 2022.08.19 11:12
  • 수정 2022-08-19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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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표교사

 

농인은 한국수어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한국수화언어법 제2조 4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인이 한국수어 및 한국어 능력을 신장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서하여야 한다(한국수화언어법 제11조 1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인의 교육에 있어서 장애 발생 초기부터 한국수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여야 한다(한국수화언어법 제11조 2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학교로 하여금 한국수어를 한국어와 동등한 교수·학습 언어로 사용하도록 하여야 한다(한국수화언어법 제11조 3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학교 교육에서 한국수어를 사용한 교육 및 한국수어를 통한 학습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한국수화언어법 제11조 4항). 교육책임자는 당해 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장애인의 교육활동에 불이익이 없도록 다음 각호의 수단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제공하여야 한다(장애인차별금지법 제14조 1항).

한국수화언어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대한민국은 농인이 어릴 적부터 수어를 자신의 모어로 사용하고 이를 통해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을 보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우리는 심심치 않게 정부 주요 브리핑 현장에 수어통역사가 실시간으로 동시통역하는 것을 보았다. BTS는 한국수어는 물론 국제수화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고 세계의 많은 아미들이 수화로 함께 자유를 외쳤다. 수어에 대한 인식은 날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길 가다 어느 청인이고 붙잡고 “수어는 언어일까요?” “농인은 아기 때부터 수어를 사용하여 자랄 권리가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과연 누가 아니라고 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각장애특수교육은 100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농사회의 수많은 농 당사자들은 “수어로 교육받을 권리”를 외치고 있다. 정말일까? 정말 특수학교 현장에는 ‘수어’가 사라진 걸까?

우선 더 이상 농학생들은 농학교에 가지 않는다. 2006년도 1526명이었던 농학교 재학생 수는 2020년 647명으로 감소하였다(출처: 청각장애(난청)학생 현황 및 교육지원방안연구 교육부, 2020). 인공와우 수술이 확대되면서 청각장애 아기들은 돌이 지나면 바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언어치료를 한다. 청각장애아동이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후 퇴원 시 병원에서 주의사항으로 꼭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절대 수어 금지’이다. 그러니 부모님은 다른 것을 돌아볼 틈이 없다.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 하나도 충격적인데,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을지 부모들은 의료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수어를 사용하고 시각에 의존하면 당연히 청력을 덜 사용하게 될 테고 그러면 말도 못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로 들린다(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지면에서는 다루기엔 버겁다. 한 번 더 칼럼요청을 받는다면 그때 다시) 그렇다 보니 청각장애학생의 79%는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79%의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만세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두 번째로 농학교에는 농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수교육법에는 장애학생 유형별 입학, 교육과정, 학급운영 등에 대한 명시가 없다. 즉 장애유형을 구분하여 학생을 받아야 할 법적 강제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생수가 줄어든 농학교는 자연스럽게 청각중복장애학생들의 입학을 늘리게 되었다. 현재 농학교 재학생 중 57%는 청각중복장애학생이다(출처: 청각장애(난청)학생 현황 및 교육지원 방안연구, 국립특수교육원, 2021).

농학교에는 농학생이 줄어들고 있고 다양한 욕구를 가진 장애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특수교사들 역시 이에 맞춰 교육을 제공할 수밖에. 작년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농학교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소통에서 주로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구어가 16%, 수어와 구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46.1%였다. 수어만을 사용하는 것은 0%였다.

이쯤 되면 이런 반문이 생긴다. 하나, 대부분의 학생이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는다면 굳이 농학교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둘, 현재 농학교에서 구어와 수어를 동시에 사용한다면 구어를 사용하는 학생에게도 수어를 사용하는 학생에게도 모두 좋은 것이 아닌가?

교육부에서는 특수교육의 방향을 통합교육으로 잡았다. 하지만 모든 장애학생들에게 통합교육이 좋은 것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다고 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저절로 배우는 것은 아니다. 아직 한국의 장애인식개선의 수준은 ‘불편한 저 사람을 잘 도와주자’에 그치고 있다. 불편한 내 친구를 불쌍해하는 마음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지는 않다. 농인과 청인은 의사소통 수단 자체가 다르다. 다른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살아간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다. 적어도 제1언어를 수어로 선택하고 자라가는 농학생에게는 수어로 배울 권리가 있다. 나의 언어로 함께 소통할 친구들을 만나고 나보다 앞서 자란 농 선배들과 농인 교사들을 만나야 나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다. 청인가정 안에서는 제공할 수 없는 농문화와 농사회를 농공동체에서 만나 수어로 소통하며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농학교의 존재의 이유이다.

한국수화언어법에서 보장하는 농인의 언어로서의 수어는 고유한 문법과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를 ‘한국수어’라고 부른다. 영어와 한국어를 같은 어순으로 말할 수 없듯이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절대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언어이다. 입으로는 한국말을 하며 손으로는 수어를 한다? 우리는 절대 이것을 한국수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수어가 아닌 한국어에 의존하여 손만 움직이는 것(이것을 수지한국어라 부른다)을 통해서는 국.영.수를 배울 수 없다. 또한 나와 세상을 탐구할 수 없다.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라 했건만 온전한 언어 없이 반쪽짜리 그릇으로 어떻게 그 많은 사고를 담아낼 수 있겠단 말인가.

필자가 속한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에서는 ‘나의 언어로 자연스럽게’를 농학생 교육의 철학으로 주장한다. 배움은 나를 둘러싼 사회의 여러 질서와 이치를 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를 배제할 수 있는가? 한국인이 일본어로 일본 역사를 배우고 일본어를 배우는 시대를 끝내기 위해 우리는 긴 시간 싸웠어야 했다. 이보다 더 긴 싸움을 농 당사자들은 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문화를 배우겠다는 이 싸움에 많은 이들이 격려해 주길 바란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농학교나 특수교사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누구보다 농학교가 잘 유지되며 농학생들이 잘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사실 우리는 같은 편이라 믿는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이다. 나와 남이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다수가 기준이라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결국 소수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사장되어도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이 외롭지 않도록 우리 편이 되어 달라 부탁드리며 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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