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여행이 길 잃은 누군가에 멋진 꿈이 되길”... 시각장애인 밴드 ‘소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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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리여행이 길 잃은 누군가에 멋진 꿈이 되길”... 시각장애인 밴드 ‘소리여행'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2.08.19 09:57
  • 수정 2022-08-31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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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푹푹 찌는 8월의 어느 날, 인천 주안에 있는 한 사설 음악학원의 연습실을 찾았다. 연습실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은 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 강한 비트와 의미 깊은 가사가 더위에 지친 마음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이번 호 기자가 만난 사람, 아니 사람들은 시각장애인 밴드 ‘소리여행’이다. 그들은 인천시시각장애인복지관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밴드교실을 통해 결성된 밴드다. 결성 3개월 만인 지난 7월 13일, 제10회 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에서 국악, 클래식, 실용음악, 무용, 연극, 뮤지컬 등 5개 분야 304팀 678명의 참가자 중 서울 본선 장려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밴드 ‘소리여행’에 인격을 부여해 그의 시점으로 들어본다. 8명의 단원은 모두 3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다. 기사 중에 존칭은 생략했음을 밝혀둔다.

불과 석 달 만의 쾌거다. 아무도 몰랐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함께한 지 석 달, 스페셜K에서의 입상은 예선 통과조차 가슴 졸이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쾌거’라고 할 수밖에.  


 우리는 ‘소리여행’, 시각장애인 밴드다. 인천시시각장애인복지관(복지관)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인천시 거주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소리여행은 모두 8명으로 이루어졌다. 그 8명 중 단 세 사람만이 인천에 거주한다. 그럼 나머지는? 더구나 인천시시각장애인복지관 소속이라며? 그래도 되는 거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된다. ‘우리’니까. 


 그럼 우선 소리여행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 보자. 

 

박정규, 소리여행 산파역이자 오랜 밴드‘꾼’
손원진, 골볼 국가대표이기도 한 리드 보컬

 

 박정규. 소리여행을 있게 한 사람이다. 그가 복지관에 들어옴으로써 복지관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밴드교실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인천사람’인 그는 복지관 직원이다. 대학시절, 충청남도시각장애인연합회 밴드에서 밴드활동을 했던 경력이 있는 그는(무려 7년이나 밴드 활동을 했다!) 우리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물론 리드 보컬이 있긴 하다. 그런데 리드 보컬인 손원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합주에 오지 못하면 그가 보컬로 나선다. 스페셜K 경연 당일에도 원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정규가 노래를 했다. 기타 못지않은 노래 솜씨의 비결을 그는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노래방을 드나든 덕”이라고 한다. 우리 단원 중 인천 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음악활동을 오래 해온 정규의 인맥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리드보컬 손원진을 소개해 보자. 그가 오늘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한 건 해외 시합에 나갔다가 돌아와 자가격리 중이기 때문이다. 원진은 우리 밴드의 막내다. 그리고 그는 골볼 국가대표 선수다. 그래서 훈련이나 시합 때문에 밴드 합주에 못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터뷰에는 지난 7월 말에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2022 국제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아시아태평양골볼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 골볼팀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예리, “소리여행의 소리는 내가 책임진다”
조재헌, 매일 기타 치는 방구석 기타리스트


 
 다음은 우리의 음악감독 이예리다. 정규가 복지관 직원으로 우리 밴드를 맡고 여러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아빠’라면 예리는 밴드의 음악적인 부분을 가다듬는 ‘엄마’다. 인천 미추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한 예리는 편곡이나 합주 지도에 관심과 능력이 있어 우리에게도 ‘선생님’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합주를 시작하면 그녀는 모든 신경을 집중해 우리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어딘가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고 바로잡아 준다. 그녀는 늘 ‘합’을 강조한다. “합은 말이야, 나를 통해 너를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라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옆 친구들의 소리를 들으며 함께 가라’고 주문한다. 합주 도중 그녀가 마이크에 대고 “잠시만요~” 하면 우리는 모두 ‘얼음’이 된다. 그녀가 ‘땡’을 할 때까지!


 조재헌, 기타를 치는 그는 우리 밴드의 맏형이다. 그는 공연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올해 초에는 여러 시각장애 배우들과 함께 국립극단의 ‘커뮤니티 대소동’을 공연하기도 했다. 복지관 평생교육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합류했다. 연주? 이전에는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기타, 그것도 일렉기타를 연주하겠다고 나섰을까. 그는 이렇게 답한다. “모집 공고를 보는 순간, 재작년에 먼저 하늘나라에 간 동생이 생각났어, 그리고 동생이 사준 기타가 눈에 들어왔지. 저걸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신청을 한 거지.” 혜광학교에서 콘트라베이스를 배우기도 했던 그는 합주가 없는 평일, 재헌은 하루에 30분이라도 주말에 합주할 곡을 연습한다. 합주가 없는 날, 그는 ‘방구석 기타리스트’다. 

 

박민수, 오랜 밴드경력 자랑하는 베이시스트
하유리, 건반을 치면 웃음꽃이 핀다

 

베이시스트 박민수는 박정규와 밴드 동지다. 정규가 활동하던 충남시각장애인연합회 밴드에서 민수도 함께 활동했다. 물론 베이시스트로. 그 인연으로 매주 토요일이면 서울 수유리에서부터 인천 주안까지 안내견 한송이와 함께 즐겁게 내려온다. 한송이는 민수가 합주를 하는 동안 그의 옆을 지키는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음악을 했지만 아직도 힘든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악기 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주법이 어려울 때, 내 자세가 어떤지 볼 수 없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고 종종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손이 부르트도록 연습을 해 극복해 낸다.  


 퍼스트건반을 맡은 이는 하유리다. 유리는 연주하는 내내 얼굴에 웃음꽃을 가득 피우고 있다. 점역교정사인 유리는 소리여행에 합류하면서부터 비로소 ‘건반’이란 악기를 치기 시작했다. ‘내가 듣는 노래를 내 손으로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이루어가는 중이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그녀는 음악 경력이 전혀 없음에도 밴드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이 때론 대견하고,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각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음악으로 하나 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놀랍다.”고 한다. 

 

임지희, 우리 모두의 흥을 책임지는 댕댕이맘
양주혜, 밴드가 좋아 산 넘고 물 건너오는 드러머

 

세컨드건반의 임지희는 하유리의 추천으로 밴드에 합류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건반은 처음이다. 피아노와 터치 감이 살짝 다르긴 하지만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고 한다. “신나는 비트에 맞춰 건반을 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비트에 몸을 맡기게 돼.” 하며 신나게 건반을 치는 그녀 덕분에 우리도 모두 흥이 나기도 한다. 안마사인 그녀는 무려 다섯 마리의 반려견을 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밴드 활동과는 무관하게 반려견 관련 자격증 따는 것과 강형욱의 보듬컴퍼니에서 주관하는 반려견 마라톤 ‘댕댕런’에 참가해 보고 싶다고 종종 말하기도 한다. 


 드럼을 치는 양주혜는 우리 중에서는 셀럽이다. 주혜는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맛깔나게 담아내 많은 구독자를 갖고 있는 유튜브 채널 ‘시시각각’을 운영하는 유튜버다. 주혜와 주혜의 안내견 주미가 그려내는 일상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혜는 우리 중 가장 멀리 산다. 남양주시 공무원인 그녀는 ‘무려’ 경기도 구리시에서부터 밴드를 하러 매주 인천으로 온다.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오는 셈이다. 때로는 국철, 때로는 전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와야 하는 험난한 길이지만 연습실에서 가장 활발한 사람이 주혜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밴드활동을 하고 싶었던 그녀에게 복지관의 밴드사업 소식은 목마른 사람 앞에 나타난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드럼이라는 악기가 밴드의 중심이긴 하지만 혼자 연주할 때는 멜로디를 만들지 못해. 그래서 내게는 내 비트에 멜로디를 입혀주는 우리 단원이 더 특별하다는 말이지.” 주혜는 이렇게 늘 우리에게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결성 3개월 만에 전국 경연에서 입상
복지관에 악기와 연습실 마련이 소원

 

소개를 하고 보니 여덟 명 모두가 참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밴드’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다. 서울, 구리, 인천, 각각 사는 곳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지만 우리는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의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음악도 좋지만 여럿이 어울려 하나의 소리를 내는 밴드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밴드를 시작한 것은 2022년 4월부터였다. 그러니까 이제 겨우 4개월 남짓 된 셈이다. 그 4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이곳 주안의 지하연습실에 모여 연습을 하고, 처음 만나 합을 맞춘 지 불과 석 달 만에 스페셜K라는 경연에도 참가했다. 


 우리가 스페셜K에 대해 안 것은 예선 접수 마감을 불과 3일 앞둔 시점이었다. 그냥 시험 삼아 한번 도전해 보자, 정도의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참가곡도 그동안 연습한 서너 곡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었고, 연습한 곡 중 가장 자신 있는 곡이 이무진의 ‘신호등’이었다. 


 예선은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제출하는 형식이었다. 부랴부랴 무대 세팅을 하고 합을 맞춰 보고 영상을 찍었다. 당연히 너무 엉성했다. “우리 분명히 예선 통과도 못 할 거야.” 모두 다의 기분이었다. 물론 본선에 진출하고 싶었으니 평소보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하긴 했지만.


 본선 진출자 발표 당일, 컴퓨터 앞에서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클릭하는 정규의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예리도 조마조마하긴 마찬가지. 명단 클릭! 와우!! 명단 속에 ‘소리여행’이란 우리 이름이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7월 13일 서울 본선을 위해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 섰다. 최선을 다한 무대. 그리고 장려상이란 결과. 너무 기뻤다. 


 이제 우리 소리여행은 새로운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바로 연말공연. 4월에 처음 만난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다양한 곳에서 소리여행의 무대를 꾸미고 싶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연습실이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10시에서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 사설학원의 연습실을 대여해서 합주를 하고 있다. 대여 연습실이다 보니 조금 더 연습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여러 팀들이 사용하는 연습실이다 보니 매번 음향기기의 위치나 설정들이 달라져 있어서 이것들을 바로잡다 보면 연습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복지관 내에 드럼, 기타 앰프 등 밴드에 필요한 악기나 음향기기만 있다면 이렇게 셋방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속상하다. 제발, 복지관 내에 연습실을 마련해 주세요. 우리 단원 모두의 소원이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주 토요일 다시 이곳 연습실로 모일 것이다. 우리는 소리를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만지는, 그래서 소리를 통한 우리의 여행이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멋진 꿈이 되어주길 바라는 시각장애인 밴드 ‘소리여행’이다.

“나에게 소리여행이란…”

 박정규(보컬 및 기타) 
“워라벨이다. 소리여행은 직장의 담당 업무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취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예리(음악감독 및 지도강사)
“쉬는 시간이다. 일과 육아에 지친 나에게 힐링을 주기 때문에…”

 

 

 

 

조재헌(기타)
“일탈이다. 일주일에 한 번 방구석 기타리스트가 아닌, 고출력 앰프를 올리게 하는 기타리스트가 된다.”

 

 

 

박민수(베이스)
“편안한 공간이다. 십오 년 넘게 해온 베이스, 마음 맞는 음악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유리(건반)
“친구다. 외롭고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임지희(건반)
“이루어진 소원 중의 하나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밴드를 동경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밴드의 일원이 된 것이다.”

 

 

 

양주혜(드럼)
“고마운 기회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가끔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을 때, 세상의 소리를 차단해 준 것이 헤드폰을 통해 들리는 음악이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 세상 행복했다. 소리여행은 그런 음악과 나를 이어주는 고마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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