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최초 ‘장애인 극단’ 설립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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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최초 ‘장애인 극단’ 설립 꿈꾼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2.07.22 09:32
  • 수정 2022-07-22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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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6년차 연극팀 ‘마냥’
작품 ‘흰지팡이’
작품 ‘흰지팡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 기자가 ‘마냥’팀의 연습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오는 8월 비장애인 객원들과 함께 꾸밀 정기공연의 아이템 회의가 한창이었다. 이혜경 배우와 최우영 배우, 그리고 오지나 연출가는 올해부터 새롭게 시도되는 비장애인과의 협업 무대에 대한 기대로 설레어 보였다. 이번 공연을 기반으로 인천 최초의 ‘장애인 극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그들의 열정은 7월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2018년 작품 ‘두 개의 항아리’ : 무대 위에 흰 천을 설치하고 천을 잡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배우들의 동선에 변화를 줬다.

 

‘장애’라는 벽을 무너트릴 배우들의 열정

연극팀 ‘마냥’은 지난 2017년 미추홀학산문학원과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간의 협약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주체적인 문화 활동 정체성 확립을 위해 창단됐다.

그동안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던 ‘마냥’은 5년간 쉬지 않고 매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면서 조금씩 성장해 왔다.

처음 그들이 무대에 섰을 때는 모두 의자에 착석한 채로 대사만으로 극을 이끌어 갔다고 한다. 시각장애의 특성상 몸짓과 동선에 변화를 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의 매력에 점차 빠지고, 또 배우로서의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도전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 첫 번째 도전은 무대 위에서 동선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미추홀학산문학원에서 ‘마냥’팀을 담당하고 있는 유인숙 대리는 이 역시도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라고 회상했다. “우선 무대 위 동선에 맞춰 흰색 천을 설치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배우님들이 그 천을 잡고 매번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것도 무한 연습이 필요했어요. 그럼에도 계속해서 저희가 몸짓과 동선의 변화를 작품 안에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배우님들이 그것에 대해 너무 즐거워하고, 뿌듯해 하기 때문이에요.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포기하거나 시도해 보지 못한 것들에 도전할 수 있고, 또 해낼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즐거워하셨어요. 그래서 저희 역시 항상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처럼 열정 가득한 배우들과 연출의 만남으로 지난해에는 무대 바닥 전체에 점자블록을 설치해 흰지팡이를 들고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고, 그동안의 작품보다 훨씬 동적이고, 생생한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인천시 최초 ‘장애인연극팀’ 창단 목표

비장애인과 협업으로 전문성 갖춘 작품 선보일 것

올해 ‘마냥’팀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동아리 활동 형식으로 운영되던 것에서 올해부터는 동아리반 10명과 심화반 3명으로 반을 나눴으며, 동아리반은 오는 10월에 진행될 학산 ‘놀래’에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며, 심화반 3명은 8월 중 비장애인 단원을 오디션을 통해 선정해 객원 배우 형식으로 함께 극장용 정기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그동안 시각장애인으로만 구성됐던 배우들도 장애유형과 상관없이 모집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걸쳐 인천시 최초의 ‘장애인 극단’을 설립한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심화반 단원인 이혜경(시각/경력 7년) 배우는 이미 다른 지역 ‘장애인 극단’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배우다. 그녀 역시 인천에 처음 생겨날 장애인 극단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너무 좋아요. 인천에는 그동안 장애인 극단이 없다 보니, 동아리 활동 정도에만 만족했어야 했는데, 안정된 시스템 속에서 관객들에게 보다 전문성 있는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서 벌써 올해 공연이 기대돼요.”

다양한 경력과 더불어 전문 극단에서 활동했기에 ‘마냥’팀에서의 활동이 답답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지는 않았냐는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녀는 솔직하게 “답답한 점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물론 처음 연극에 도전하는 분들도 있고 하다 보니 기초과정 수업도 있고 하니 답답한 것도 있죠. 하지만 목소리가 저보다 좋은 분들도 있고, 노래를 잘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냥 시스템이 다른 거지. 좋고 나쁨은 없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제가 활동할 땐 여러 장애유형의 분 중 시각장애인은 저 한 명이었는데, 그런 면에서 여기는 좀 더 마음은 편하죠. 앞으로 새로운 배우분들도 들어오실 텐데, 제가 그때 느꼈던 외로움을 잊지 않고 그분들을 보듬어 주려고 하고 있어요. 도전 자체가 의미 있고,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으며, 모두 용기 내서 도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극단이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마냥’의 연습현장

올해 8월 처음 무대에 서게 될 최우영 배우(시각/경력 1년)는 빨리 시나리오를 받고 분석도 연기 연습도 하고 싶다며, 신인배우로서의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 “사실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있는 상태여서 아직도 제가 장애를 가졌다는 걸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저희 연출가님이 항상 해주시는 ‘장애인 극단이 아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극단이다’라는 말에 오히려 용기를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자녀들이 뮤지컬배우이기도 한 최우영 배우는 그 끼가 그녀에게서 나왔다고 확신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이전에도 낭독극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책도 많이 보고 아이들과 전시회나 뮤지컬 관람도 많이 하면서 배우고 익히려고 하고 있어요. 어떤 역할을 시켜주시든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낼 자신 있어요.(웃음) 하루빨리 무대 위에 섰을 때의 설렘을 느껴보고 싶어요.”

연극 ‘노란 짜장면’
연극 ‘노란 짜장면’

‘마냥’팀은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직접 작품의 소재를 찾고 시나리오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자신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느껴왔던 것을 선보이는 것이야말로 어느 작품보다 진정성과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애’에 대해 어두운 면과 교육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전문 극단으로 가치를 평가받기 위한 도전의 첫발을 떼려고 한다.

‘장애인’이라는 꼬리표에서 완전히 해방돼 무대 위에 설 그들의 도전을 응원하며, ‘마냥’이 가진 뜻처럼 ‘부족함 없이 실컷’ 그들이 끼를 분출하는 모습을 보는 그날을 기대한다. <차미경 기자>

 

극단 ‘마냥’의 오지나 연출가(가운데)와 이혜경(왼쪽), 최우영 배우
극단 ‘마냥’의 오지나 연출가(가운데)와 이혜경(왼쪽), 최우영 배우

“우리는 장애인극단이 아니에요…그냥 연극 하는 사람들 모임이죠”

오지나 연출가/강사

 

“우리는 그냥 연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중에 보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걷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뿐이죠. 그 외에 특별한 것 없어요.”

‘마냥’팀의 강사이자 연출(이하 강사)을 맡은 오지나 강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연극팀’이라고 구분 짓는 시선을 지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지난 2017년 ‘마냥’팀의 창단부터 함께했던 오지나 강사는 지금은 그들의 장점과 부족한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대본을 쓰고 무대를 연출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오히려 처음에는 그분들의 목소리와 감정표현에 놀랄 정도였어요. 발성도 너무 좋으시고, 또 낭독극을 하셨던 분들도 계셔서 대사를 읽을 때 감정을 싣는 것도 너무들 잘하시더라고요. 뭐, 이 정도면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무대에 설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눈이 보이시지는 않지만, 일상생활도 자연스럽게 하시고, 이동에도 큰 불편함이 없어 보이셨거든요. 근데 그건 제가 그분들은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던 거였더라고요.”

오지나 강사가 처음 마주한 미션은 단원들에게 움직임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아이처럼 울어주세요.”. “진저리를 치며 대사를 해주세요.”라는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원들을 보고 적지 않은 당황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중도 실명자가 아닌 선천적으로 실명하신 분들은 비장애인들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회적인 몸짓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으셨어요. 그분들은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아이처럼 우는 그 움직임을 보신 적이 없으셨던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 저에 이런 지시를 이해하기 힘드셨던 거죠. 이러한 사례들을 반복하면서 ‘아, 생각보다 쉽지는 않겠구나’라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얻었죠.(웃음)”

하지만 오히려 오지나 강사는 단원들의 손과 발을 직접 움직여 주고 몸으로 터치하며 ‘움직임’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과정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단원들 역시 움직임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그분들도 자신들이 가진 장애 때문에 연극을 하더라도 목소리만으로 앉아서만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다가 움직임을 배우고, 함께 표현하며 무대에 서는 것을 굉장히 만족해하시더라고요. 가르치는 저도, 익히는 배우들도 즐거워하고 보람 있어 하니 실력이 향상되는 건 당연한 거겠죠.”

올해 오지나 강사와 ‘마냥’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바로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공연이 그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장애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도 말했다.

“장애를 소재로 한다고 해서 꼭 계몽적이고 교육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것이 예술이지 교육은 아니니까요. 물론 몇몇 분들은 장애를 간혹 희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실 수도 있지만, 저는 예술이 모든 사람을 100%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실과 분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행히 저와 함께하는 배우들이 모두 이 부분에 대해서 공감해 주시고 있어요. 또 처음 시도하는 비장애인과의 공연에 대한 기대도 커요. 이건 제가 처음에도 이야기했던 ‘마냥’을 장애인 극단이라고 구분 짓는 시선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해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배우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배우와의 협업으로 메꿔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이것은 반대로 비장애인 배우들이 부족한 감정표현이라든가 호소력 있는 목소리 같은 부분은 또 다른 배우들이 메꿔주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무대를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에요.”

오지나 강사는 마지막으로 ‘마냥’은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진입장벽이 아주 낮은 곳이라며 누구나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겁먹을 필요 없어요. 연극은 생활과 가까운 예술 장르거든요. 그리고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저희는 장애인 극단이 아니에요. 그냥 연극팀이고, 단원 중에 장애를 가지고 있을 뿐이죠. 그러니, 누구나 들어오셔서 함께 사는 이야기를 풀어냈으면 좋겠어요. 뭐, 작은 바람을 하나 더하자면 암기력이 좋은 단원을 원한다는 것? 이건 모든 세상의 연출가가 가지고 있는 욕심일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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