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행복한 장애인 영화가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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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행복한 장애인 영화가 나오길…
  • 편집부
  • 승인 2022.07.21 09:37
  • 수정 2022-07-2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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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예/지체장애인, 아마추어 영화배우

사람들은 나를 일러 ‘코스모스 이정예’라 한다. ‘코스모스 이정예’는 내 유튜브 채널명이기도 하다. 나는 젊어서부터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이를 편집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렇게 혼자 사부작거리며 만든 동영상을 올리는 곳이 바로 유튜브 채널이다.

그리고 나는 중증지체장애인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아 관절이 거의 다 망가졌고, 두 번의 사고로 두 다리를 다쳐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못 하는 게 많다. 걷질 못할 뿐만 아니라 혼자 세수도 못 하고 머리도 못 감는다. 영화에서 날 본 사람은 내 장애가 그리 심한 줄 몰랐다가 막상 만나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 내가 영상을 찍고 영화에 출연했다고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단편영화지만 영화에 출연도 했으니 나는 배우다. 전문적인 배우는 아니지만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의 일상을 전하는 장애인 배우. 내가 출연한 영화는 김종민 감독의 <죄송한>과 <중고거래>인데, 두 작품 모두 그 모티프가 내가 경험한 일이다.

특히 <죄송한>은 내가 겪었던 엘리베이터에서의 공포를 소재로 만든 영화다. 사진 찍고 영상 편집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지인으로부터 영화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고 시작한 것이 김종민 감독과의 ‘내바시_영화’ 모임이었다. 당시 영화 공부는 건물의 8층에서 이루어졌는데, 어느 날 어쩌다 보니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건물에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와 비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각각 한 대씩 있었는데, 마침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는 누군가 막 타고 출발을 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비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공간이 좁아 전동 휠체어를 돌릴 수도, 버튼의 위치가 높아 가고자 하는 층을 누를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엘리베이터에 의해 ‘운반’된 나는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자 겨우 내릴 수 있었다. 내리고 보니 지하주차장이었다. 너무 무서웠고, ‘또 어떻게 올라가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마침 한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해서 함께 탔다. 그래서 8층을 눌러 달라고 부탁을 하곤 “어휴, 엘리베이터 버튼이 왜 이렇게 높이 있는 거야.”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그 아저씨가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장애인 거는 따로 있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은 꼭 장애인용을 타라는 법이 있나요? 비장애인은 장애인 거 그냥 타잖아요. 그리고 장애인 거 아니어도 버튼을 꼭 높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했더니 아저씨는 “그럼 불편하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하니 꼭 문 앞에 높게 층수 버튼을 만들어 놔야 비장애인이 편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그날 영화 공부 모임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이 이야기를 했고, 김종민 감독이 이를 모티프로 <죄송한>을 만들면서 나를 주인공으로 기용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영화 데뷔작을 찍었다.

비장애인이 들으면 대단하지도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이고 비전문 배우인 나는 단 10분 38초짜리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 하루종일 찍고 다시 찍고 반복해야 했다. 눈을 깜빡였다고 다시 찍고, 대사 톤이 맞지 않는다고 다시 찍고…. 매우 더운 여름날, 사실 그만 찍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란 것을 찍고 나니 그것이 정말 ‘내바시(나를 바꾸는 시간)’가 되었다. 영화를 찍기 전에는 사실 일 년에 한두 번 극장에 갈까 말까였다. 맨 앞줄에 있는 장애인석에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고문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편영화지만 영화를 찍고 나니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특히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의 경우 고생고생해가며 찍는데 관객이 그걸 안 봐주면 보람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보기 위해 자주 영화관에 간다. 물론 아직도 장애인에게는 불편한 영화관이지만.

그렇게 자주 영화를 보다 보니 또한 의문이 생겼다. 최근에 상영한 <복지식당>을 비롯해 상업영화 중에서 장애를 그린 많은 영화들이 왜 하나같이 장애를 불쌍하게만 그리고 있는 것일까, 장애를 다룬 영화는 왜 우울하기만 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장애인이었다. 그렇다고 내 생활이 우울하고 어두웠는가 하면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고 씩씩하고 밝다고 한다. 유머도 있다. 비장애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불행하지 않다. 그래서 비장애인이 만든 영화에서 우울한 장애를 보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그래서 바람이 생겼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장애인 영화, 밝고 환한 장애인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그래서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을 불쌍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유쾌한 동반자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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