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전히 갈 길 먼 출범 20주년 맞은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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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전히 갈 길 먼 출범 20주년 맞은 인권위
  • 편집부
  • 승인 2021.12.02 14:47
  • 수정 2021-12-02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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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위한 국민들의 오랜 열망과 김대중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2001년 출범한 지 지난 11월 25일 20주년을 맞았다.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을 위한 독립적 인권전담 기구이다. 입법, 행정, 사법부 등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된 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 강제성 있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해 역대 정권의 성향에 따라 유명무실하는 등 부침이 있었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지난 20년간 15만8790건의 진정사건을 처리하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양한 인권침해와 차별을 바로잡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권위는 장애를 이유로 보건소장 임명에서 배제된 차별 진정 ‘제1호’ 사건에 이어 ‘살색’을 피부색 차별이라며 ‘살구색’으로 대체하도록 권고하고 총 접수 건수(11만4628건)의 19.5%에 달하는 경찰의 ‘물리적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진정, 접수 사건의 2.9%(3286건)에 달하는 검찰의 ‘인격권 침해’ 진정사건과 같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을 처리함으로써 약자의 ‘인권’을 대변했다. 한국군 파병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황에서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 반대의견 표명,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자 인정,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개최와 관련해서도 정부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고 사형제 폐지 의견표명,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권고한 사실은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인권위의 미래는 시계 제로다. 정권에 따라 인권위의 정체성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2009년 정원이 208명에서 164명으로 축소된 사건이 이를 웅변한다. 세월호 유가족 인권침해 등 중요 사건에 인권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전임 위원장 시절, 직원 63%가 스스로 ‘핵심과제 해결 미흡’이라고 평가하고 인권위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내부 인적역량 미흡, 간부들의 역량 부족을 꼽았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2020년까지 누계 진정건수 14만7383건 중에서 인용은 5.65%(8334건)에 불과하다. 대다수인 94.04%(13만8773건)가 미인용 처리됐다. 미인용 중 각하 63.19%(9만3244건), 기각이 29.40%(4만3393건)란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인권위 출범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시대착오적인 의식구조가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똬리를 틀고 있어 중요한 사회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젠더,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문제는 물론 시대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혐오와 차별문제가 늘어나고 있는 양상이지만 인권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일 것을 지시했으나, 위상은 높아졌지만 상응하는 갈등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여전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뒤늦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견표명을 한 것도 조직의 관료화와 함께 논쟁적인 사안에 의도적으로 소극적인 대응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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